[데일리매거진=배정전 기자] 금융권에서 시작된 고졸자 채용 바람이 공공기관으로 확대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직무분석을 통해 고졸 출신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파악한 뒤 다음 달 고졸 출신을 채용에서 우대하는 방향으로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인사운영에 관한 지침'을 개정할 방침이다.
이에 앞서 은행권은 3년간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를 중심으로 고졸 인력 2700여 명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 대기업도 고졸자 채용에 발 벗고 나서고 있으며, 정부의 독려에 따라 제2금융권도 어떤 식으로든 고졸 채용 확대 추세에 동참할 전망이다.
고졸자 채용 확대는 기본적으로 청년 취업률을 높이는 것인 데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학력 인플레 완화도 기대할 수 있어서 두 손 들고 환영할 만하다.
문제는 이런 계획이 갑자기 너무 성급하고 허술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고졸자 채용 바람이 자칫 반짝 현상에 그치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되레 더 복잡하게 만들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은행권 고졸자 채용의 경우만 해도 대부분 계약직 중심으로만 이뤄지고 있어서 비정규직 인력만 확대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당장 취업이 아쉬운 입장에서야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닐지 모르지만, 은행들이 차별적인 인사 제도를 개선하지 않고 고졸 계약직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졸 창구 직원은 계약직으로 2년이 지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것이 보통이다. 무기계약직은 고용이 보장되는 반면 임금·승진 등에서 여전히 정규직과 차별 대우를 받는다.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이 되려면 이른바 '전환고시'를 거쳐야 하는데 통과되는 비율이 매우 낮다.
이런 제도를 그대로 둔 채 고졸 창구 직원만 늘린다면 결국 계약직과 무기계약직 숫자만 키우는 셈이 된다. 비정규직 축소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오히려 차별을 더욱 고착화해 문제를 복잡하게 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은행들이 고졸 신입 행원의 대학 진학을 지원하겠다는 방침도 학력인플레이션 완화 취지와 맞지 않는다. 고졸 학력으로도 차별받지 않도록 인사제도를 바꿔 고졸 행원의 대학 진학 수요 자체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다.
모처럼 여론의 환영을 받는 고졸 채용 계획이 자리를 잡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다 치밀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고졸과 대졸자 초임은 각각 137만 원과 203만 원으로 대졸이 고졸의 1.5배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서도 미국 다음으로 차이가 크다. 해당 직원들이 50대가 되면 그 차이는 배에 달한다. 기업들이 임금 구조를 대졸자 중심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승진 구조도 대졸자 중심으로 돼 있다. 이런 여러 문제점들을 사회적 합의 아래 꾸준하게 개선해 나가야만 고졸자 채용이 한때 바람에 그치지 않고 뿌리를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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