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ㄹ매거진=배정전 기자] 작년 1월부터 올 8월까지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사장·기관장·상임감사로 임명된 인사 중 75%가 정치권과 청와대, 정부 부처 출신의 낙하산 인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 들어 공정사회를 새 국정 목표로 내세웠던 정부가 정작 공공기관 인사에서는 고질적인 전관예우와 낙하산 인사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성곤 의원실에 제출한 공공기관장 및 상임감사 임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작년 이후 올 8월까지 정부가 임명한 공기업 사장과 공공기관장, 상임감사 106명 중 75.4%인 80명이 공공기관과 관련된 정부 부처의 고위 공무원(34.9%)이거나 정치권 인사(22.6%), 청와대 수석·비서관·행정관 출신(17.9%) 등이었다. 반면 교수·경제인·공공기관 임직원 등 해당 분야 전문가는 21.7%(23명)에 그쳤다.
◆공공기관장 절반은 부처 낙하산
공기업 사장과 공공기관장 53명 중 관련 부처 고위 공무원 출신은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건설교통부 차관)과 홍석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사장(중소기업청장) 등 27명(51%)에 달했다. 공공기관장 자리가 사실상 정부 부처 차관·실장·국장 등 고위 관료들을 위한 '전관예우용'으로 변질된 것이다.
청와대 비서관 등 대통령 주변 인사는 장석효 한국도로공사 사장(대통령직 인수위 한반도대운하 팀장)과 양유석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장(청와대 방송정보통신비서관) 등 8명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을 도왔던 측근 인사들을 위한 정권 말 '보은용 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경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17대 의원)과 이원창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16대 의원) 등 한나라당 출신 인사 4명도 공공기관장에 기용됐다.
공기업·공공기관의 상임감사 53명 중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이재열 한국조폐공사 감사 등 청와대 출신이 11명이었다. 특히 최근에는 지자체 출신 인사들이 대거 약진했다. 청주시장을 지낸 한대수 한국전력공사 감사와 서울 은평구청장 출신의 노재동 한국마사회 감사 등 시장·군수와 지방의회 의원 출신이 11명에 달했다. 정부 부처 공무원 출신이 10명, 한나라당 당직자 등 정치권 인사가 9명이었다.
◆전관예우 뿌리 뽑겠다더니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월 "공정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관행화된 전관예우를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했다. 정부도 공공기관장 인사에서 관료나 정치인 출신을 배제하고 경영 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민간 출신을 주로 발탁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정부가 스스로 세운 이 인사 원칙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올 들어 임명된 공공기관장 31명 중 정부 부처와 청와대·정치권 출신이 64.6%인 20명에 달했다. 올해 공공기관 상임감사 인사(총 23명)에서도 해당 공공기관과 전혀 관계가 없는 시장·군수·지방의원 출신 11명이 감사에 임명되는 등 정치권·청와대·부처 출신이 82.6%(19명)였다. 교수·경제인 등은 13.1%(3명)에 그쳤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는 "전관예우 인사로 인해 공공기관의 독립성과 책임성이 떨어지고 부처의 하도급 기관처럼 되고 있다"면서 "정치권까지 나서서 마지막으로 한 자리 챙기려다 보니 낙하산 인사의 악순환이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 데일리매거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