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매거진=박대웅 기자] 지난 10·26 재보선에서 보듯 민심은 여전히 이명박 정부와 집권 여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이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29일 밤 김황식 총리, 임태희 대통령실장,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등이 참석한 당·정·청 수뇌부 9인회동에서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31일인 오늘까지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한·미간 '합의에 따라' 내년 1월 1일 발효하려면 준비기간 60일을 감안해 31일 오늘까지 비준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이같은 주장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1월 1일 발효는 한·미가 공식적으로 합의한 내용이 아니며 양국 수석대표가 암묵적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협정문 24조5항에는 '양 당사국이 적용가능한 법적 요건 및 절차를 완료하였음을 증명하는 서면통보를 교환한 날로부터 60일 후 또는 양 당사국이 합의하는 다른 날에 발효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정부가 수석대표간 암묵적 합의 사항을 마치 서면교환 내용인 것처럼 여론을 오도하는 것은 국회와 국민을 기만하는 처사다.
농·축산업 단체는 물론 각종 시민단체들이 반대하고 있는 한·미 FTA를 정부가 나서 10·26 재·보선 패배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참으로 이 정부는 민심이 두렵지 않은 모양이다. 더욱이 이같은 처사는 여당은 물론 국회를 정부의 거수기로 보는 행태로 엄연한 3권분리 원칙의 위반이다. 당·정·청의 한·미 FTA 강행처리 움직임이 알려지면서 30일 오후 국회에서 예정됐던 외교통상교섭위원회 전체회의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등 무수한 쟁점을 남겨둔 채 야당의 반발로 무산됐다.
특히 한·미 FTA 비준에 쟁점으로 등장한 투자자·국가소송제도에 대해 정부는 '기존 자유무역협정과 투자협정 대부분에 포함돼 있기에 한·미 FTA협정에만 특별한 제도가 아니라고 밝혔다. 미국 의회가 비준한 이행법률안은 협정과 미국 법령이 충돌할 경우 미국 법령이 우선한다고 돼 있다. 더욱이 미국 정부 이외 어떠한 자도 협정을 근거로 청구권이나 항변권을 갖지 못하도록 못박고 있다.
때문에 정부가 국회에 비준을 요청안 비준동의안이 가결될 경우 국내 법률은 한낱 종이짝으로 변화게 된다. 또 미국 기업이나 투자자는 국내 법원을 통한 구제나 국제 중재 절차를 통한 제소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국제적 영향력이 막강한 미국측이 미국 투자자나 기업의 손을 들어줄 환경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10·26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의 패배는 기본적으로 정권의 실정에 의한 것이다. 바꿔 말해 한나라당이 정권의 실정을 국회에서 통과시켜주는 거수기 노릇을 했다는 것에 대한 심판적 성격이 강하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자문해야 한다. 다시금 정권의 거수기 노릇을 자행하는 것이 그들이 말하던 '당 쇄신'과 합치하는지를 말이다.
민주당 역시 노무현 정권 때 맺은 한·미 FTA는 '좋은 FTA'라는 식의 논리를 접고 한·미 FTA를 근본적이며 치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최근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관련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비준안 처리에 응할 수도 있다는 갈팡지팡한 행보는 민주당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자충수일 뿐이다.
국회는 협정의 근본 문제를 따지고 바로잡아야 한다. '미국이 했으니 우리도 하자'는 괴논리로 국익을 저버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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