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매거진=심재희 기자] 이청용의 소속팀 볼턴 원더러스의 부진이 심상치 않다. 이청용이 장기부상으로 빠져 있는 가운데, 시즌 중반에 접어드는 시점까지도 리그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막전 승리 이후 리그 6연패를 당하면서 무너졌고, 이후에도 지지부진 하다. 지난 시즌 강호들을 상대로도 결코 물러서지 않으며 보여줬던 당당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과거 '뻥축구 일변도'로 나섰을 때처럼 무기력하기에 팬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볼턴의 부진 이유는 무엇일까?
# 6연패에 대한 이유 혹은 변명
볼턴과 퀸스 파크 레인저스의 1라운드 경기 전. 현지 도박사들은 퀸스 파크 쪽의 승리 가능성을 더 높게 점쳤다. 승격팀 퀸스 파크가 첫 홈경기를 의욕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볼턴이 지난 시즌보다 전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평가됐기에 볼턴의 승리에 걸린 배당금이 더욱 높았다. 실제로 볼턴은 시즌 개막 전에 적잖은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팀을 떠난 선수와 새로 들어온 선수들도 꽤 있었다. 지난 시즌 보여줬던 안정된 모습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나타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볼턴은 도박사들의 예상을 비웃으면서 개막전을 대승으로 장식했다. 공수 모두 탄탄한 모습을 보이면서 퀸스 파크를 4-0으로 대파했다.
'승리의 효과'는 국내나 해외나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개막전에서 대승을 거두고 나니 볼턴에 대한 대접이 달라졌다. 강호 맨체스터 시티와의 2라운드에서 볼턴의 선전을 예상하는 시각이 많았다. 경기 결과는 2-3 볼턴의 패배. 맨체스터 시티의 막강화력을 막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볼턴이 잘 싸웠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그러나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 패배 이후 볼턴의 인기는 조금씩 추락하기 시작했다. 내리 6연패. 6연패 기간 동안 무려 21실점이나 내주면서 고개를 숙인 볼턴이다.
6연패에 대한 평가는 반반이었다. '리그 꼴찌 추락의 이유가 있다'는 쪽과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쪽이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다. 볼턴을 두둔하는 쪽은 '강호들과의 맞대결'을 부진의 이유로 꼽았다. 볼턴은 6연패 기간 동안 5번이나 우승후보들과 만났다. 맨체스터 시티를 비롯해,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날, 첼시와 상대했다. '죽음의 일정' 속에서 무너졌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변명'이라는 의견을 내세우는 쪽의 시선은 차갑디 차가웠다. 지난 시즌의 볼턴 역시 위에 언급한 팀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총 1승 1무 8패) 경기 내용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 시즌 볼턴은 홈에서 아스날을 잡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비겼다.
* 볼턴의 시즌 초반 성적
1라운드 vs 퀸스 파크 레인저스(원정) 4-0 승리
2라운드 vs 맨체스터 시티(홈) 2-3 패배
3라운드 vs 리버풀(원정) 1-3 패배
4라운드 v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홈) 0-5 패배
5라운드 vs 노르위치 시티(홈) 1-2 패배
6라운드 vs 아스날(원정) 0-3 패배
7라운드 vs 첼시(홈) 1-5 패배
8라운드 vs 위건(원정) 3-1 승리
9라운드 vs 선더랜드(홈) 0-2 패배
10라운드 vs 스완지 시티(원정) 1-3 패배
# '코일 매직'의 실종
지난 시즌 오웬 코일 감독은 '코일 매직'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알짜배기 선수들을 영입해 팀의 내실을 다졌고, 적절한 용병술로 승부처에서 매우 강한 모습을 보였다. 이전까지 단순한 팀 컬러를 보이던 볼턴의 모습에 '코일 매직'을 더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코일 감독은 세밀한 패스워크를 바탕으로 컴팩트 한 경기 운영을 펼치면서도, 볼턴 특유의 롱 볼 축구를 버리지 않고 조화를 이뤄냈다.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재능 있는 선수들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공격 옵션을 만들어나가며 과감한 공격 승부사로 거듭났던 코일 감독이다.
그러나 올 시즌은 '코일 매직'이 완전히 실종된 느낌이다. 코일 감독 입장에서는 차와 포를 모두 떼고 장기를 두는 상황이니 답답하기 그지없을 터다. 우선, 부상자들이 적지 않아 정상적인 전력을 발휘하기가 힘들다. 이청용과 스튜어트 홀든이 장기부상으로 쓰러져 중원의 에너지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여기에 샘 리켓츠, 마르코스 알론소, 타이론 미어스도 부상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중원과 수비에서 부상자가 속출해 팀을 받치는 힘이 현격하게 떨어지고 말았다.
여기에 새로 영입한 선수들의 활약상도 지난 시즌에 비하면 '빵점'에 가깝다. 다비드 은곡, 가엘 카쿠타, 데드릭 보야타, 툰자이 산리, 크리스 이글스 등 새로 수혈한 공격-중원-수비의 모든 선수들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지난 시즌 첼시에서 임대 영입되어 볼턴의 공격에 엄청난 힘을 불어넣었던 다니엘 스터리지에 대한 감사함만 느껴질 뿐이다. 부상으로 주축 선수들이 빠진 상황에서 신입생들까지 헤매고 있는 형국. '코일 매직'의 실종 이유다.
# 이청용의 부재와 윤활유
국내 팬들 입장에서는 볼턴의 부진과 이청용의 부상 공백을 결부시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청용이 빠진 상황에서 볼턴이 최악의 길을 걷고 있어 웃기도 그렇고 울기도 그런 상황이다. 돌려놓고 보면, 그 만큼 이청용이 볼턴에서 차지하던 비중이 높았다는 의미다. 이청용의 부재는 볼턴에게 어떤 의미일까?
볼턴은 전통적으로 뻣뻣한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했다. 뻣뻣한 스타일을 나쁘게만 봐서는 곤란하다. 피지컬을 앞세운 힘의 축구를 구사하는 것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이전 볼턴의 축구 스타일이 아기자기한 맛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팀 구성원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최우선의 선택이 힘을 앞세우는 스타일이라면, 코칭스태프와 팀 구성원들을 비난해서는 곤란하다. 실제로 볼턴은 힘으로 버티면서 강팀들을 적잖이 괴롭히기도 했다. 올 시즌 '정말 꺾기 힘든 팀'으로 거듭나고 있는 스토크 시티를 연상하면 이해가 빠를 수 있다.
그런 뻣뻣한 스타일에 윤활유를 제공한 인물이 다름 아닌 이청용이었다. 이청용은 볼턴에 입단한 이후 창의적인 플레이로 팬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단지 기술이 좋아서가 아니다. 경기의 흐름을 한 번에 뒤바꿀 수 있는 능력으로 볼턴의 스타일에 변화를 줬다. 빠르고 세밀한 플레이를 선호하는 코일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난 이후 이청용의 창의성은 더욱 빛을 발했다. 이청용의 부재와 함께 윤활유가 끊기면서 볼턴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스타일이 되고 말았다. 힘과 세기를 동시에 가져가는 밑그림은 지난 시즌과 같다. 하지만 힘과 세기가 적절하게 조화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윤활유가 부족하다. 그 윤활유의 중심이 바로 이청용이다.
# 악몽의 3개월, 남은 6개월은?
유럽의 빅 리그 팀들은 한 시즌에 40경기 이상씩을 치러야 한다. EPL 클럽들은 기본적으로 리그 38경기를 소화하고, 각종 컵대회에서도 여러 경기를 펼쳐야 한다. 시즌은 길고 경기는 많은 셈이다. 볼턴이 만회할 기회와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다는 뜻이다. 물론, 시즌 초반에 보여준 모습이 계속 이어진다면 계속 고전할 가능성이 짙다. 하지만 신입생들의 적응과 부상 선수들의 복귀, 그리고 코일 감독의 능력 등이 서서히 조화를 이뤄나간다면 반격의 여지는 충분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볼턴의 진짜승부는 지금부터다. 초반 강호들과의 대결에서 뭇매를 맞았지만, 리그 중반부에는 엇비슷한 전력을 갖춘 팀들과의 대결이 많이 잡혀 있다. 계속 부진이 이어진다면 끝없는 추락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반전에 성공한다면 목표로 삼았던 중상위권 도약도 허황된 꿈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위기이자 기회'의 문턱 앞에 서 있는 볼턴이다.
EPL의 한 시즌은 9개월 간 길고 길게 펼쳐진다. 볼턴은 올 시즌 9개월 가운데 첫 3개월을 망쳤다. 초반 10경기 성적이 2승 8패로 최악 수준이다. 공격도 엉망이고, 중원도 허술하고, 수비도 불안불안 하다. '총체적 난국'이라는 표현이 딱 알맞다. 리그 테이블 가장 아래에서 시련의 순간을 경험하고 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겠다. 남은 기간은 6개월이다. 그 6개월이 희망이 될지 악몽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진짜 승부'에 나서는 볼턴이 위기를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제 어느 순간에 이청용이 볼턴에 다시 윤활유를 뿌려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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