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유럽연합(EU)이 요구해온 경제 개혁 법안을 의회가 통과시킨 후 사임하겠다고 8일 약속했다. 언론 재벌 출신으로 지난 17년에 걸쳐 총리직을 3차례나 맡았던 베를루스코니(75) 의 정치 경력이 이탈리아가 유럽 부채 위기의 수렁 속으로 빠지면서 끝을 맞게 됐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이날 앞서 의회에서 출석 과반수만 필요한 일반 투표 과정을 통해 신임에 필요한 재적 반과수 득표를 얻지 못한 상황을 직면한 뒤 저녁 지오르지오 나폴리타노 이탈리아 대통령과 약 한 시간 가량 만났다. 회동 후 대통령궁은 성명을 통해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투표가 뜻하는 바를 이해해"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이탈리아의 공적 부채을 억제하는 경제 개혁 법안을 의회가 통과시키는 대로 사직하겠다고 회동에서 약속했다고 말했다.
개혁 조치에 관한 법안 투표는 내주 예정되어 있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이탈리아 정부는 유럽의 위험해만 가는 부채위기로부터 이탈리아를 방어할 긴급 개혁 조치를 단행하라는 압력을 받아왔다. 그러나 약한 연합정부 구성력과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으로 경제 시장은 17개국 유로존을 무너뜨리고 전 세계 경제에 충격파를 몰고올 이탈리아 경제 재앙에 대한 우려로 심하게 흔들려 왔다.
이탈리아 정부가 돈을 빌릴 수 있는 이자율은 8일 유로존이 창설된 1999년 이후 최대치까지 치솟았다. 이탈리아 정부 채권 10년물에 대한 이자율은 0.24 퍼센트포인트 올라 6.77%가 됐다. 7% 이상의 이자율은 변제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며 그리스,포르투갈 및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분기점으로 작용했다.
대통령궁은 일단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사임하면 대통령은 새 정부 구성을 위한 정치권과의 협의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총선이 있기 전 과도정부 총리로서는 마리오 몬티 전 EU 경쟁위원회 의장이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궁 성명에는 조기 총선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날 의회는 행정부의 2010년 결산서를 출석 과반수 투표로 통과시켰으나 정부를 계속 이끌고 갈 신임에 필요한 득표력을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보유하고 있지 못함을 노출시켰다.
하원 투표에서 찬성 308표 반대 무표가 나왔으나 321명의 의원들이 기권했다. 630명 총원의 하원에서 신임에 필요한 재적 과반수 316표에 베를루스코니는 8표가 부족한 것이다.
이 투표결과 직후 중도 좌파의 야당 지도자 피에르루지 베르사니는 "현 정부는 과반수 미만이다!"고 소리치면서 "이탈리아 앞에서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다면, 귀하는 사퇴하라"고 말했다. 베르사니가 말하는 순간 베를루스코니는 종이에다 "사직"과 "8명의 배신자"라고 휘갈겨 썼음을 사진은 보여주고 있다.
투표 이전부터 베를루스코니의 최대 연정 파트너 동지인 북부 리그의 움베르토 보시도 사임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1994년의 베를루스코니의 첫 보수 연정을 무너뜨린 장본인인 보시는 "그에게 물러서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유로존 제3의 경제대국이지만 부채가 2조6000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내년에만 국채를 해결하기 위해선 4100억 달러를 빌러와야 한다.
중도 좌파의 야당은 오래 전부터 섹스 스캔달, 나라보다는 총리 개인의 사업 이익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춘 법안 제정 및 개인 비리 소송연루 등을 들어 베를루코니의 사퇴를 요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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