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위로, 의식 위로 떠오르는 미스터리. 심리스릴러 "해빙"
한국 사회에 드리운 불안 징후를 스릴러적 접근으로 들여다 보다.
[데일리매거진=김태희 기자] 몇 년 전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수면내시경 도중 가수면 상태에서 평소와는 다른 온갖 행태를 보이고 말을 내뱉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수면내시경을 하면 안 되는 이유’ 라는 동영상. 그리고 한강의 얼음이 본격적으로 녹는 4월에 한강 수난구조대가 가장 많은 시체를 건져 낸다는 기사.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요소에서 이수연 감독은 <해빙>을 처음 떠올렸다.
사방에 꽃이 피는 아름다운 계절, 한강 위로 시체가 떠오른다면? 그리고 누군가 수면내시경 도중, 살인을 고백하는 듯한 말을 털어 놓는다면? 시체를 둘러싼 살인의 비밀과 무의식 저 아래 봉인되어 있었던 살인 행각의 비밀이 맞물리면서 <해빙>은 이중적인 미스터리의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사진, 영상=롯데엔터테인먼트
<해빙>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15년 전 미제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했던 경기도 북부의 한 신도시다. 논밭과 고층 아파트가 공존하고 원주민과 이주민의 주거 지역은 묘하게 구분되어 있다. 해결되지 않는 사건이 파묻혀 있는 땅 위에 올라가기 시작한 고층의 아파트는, 많은 것을 해결하지 않은 채 개발과 경제라는 욕망의 드라이브를 걸었던 한국 사회의 대표적 풍경이다.
그리고 주인공 승훈은 빚내서 서울 강남에 개업했던 병원이 망한 후, 계약직 의사로 전락해 자신이 속하고자 했던 곳과는 극과 극으로 다른 이 곳으로 오게 된다. 두 번의 경제위기를 겪은 후, 한국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중산층을 대표해서 보여주는 듯한 인물인 승훈은 연쇄살인의 메카로 불렸던 신도시에서 살인사건의 비밀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승훈의 시선과 감정을 쫓아 드러나기 시작하는 비밀의 실체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악을 끌어내는, 삶 자체가 서스펜스로 가득한 곳. 지금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만든다.
강렬한 남성성의 배우 조진웅. 그의 모습은 강인한 의지와 행동력을 갖춘 강렬한 남성성으로 관객과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해빙>의 조진웅은 우리가 그와 등식으로 연결시켰던 남성성과 아드레날린이라는 이미지와는 180도 다르다. 의사라는 전문직도 처음이지만 단순히 직업의 설정을 넘어서는 변신을 통해 극을 끌고 간다. 시종일관 승훈의 시선과 내면을 따라가는 영화 <해빙>에서 조진웅은 차차 드러나는 비밀에 맞닥뜨렸을 때의 그의 반응과 표정 변화를 통해 자신이 느끼는 긴장감과 공포, 의혹 속으로 관객들을 함께 데려간다.
신구, 김대명, 이청아, 송영창. 고정관념처럼 그들에게 덧씌워져 있었던 이미지를 뒤집고 역으로 활용하는 이들의 연기는, 다음 상황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고, 이들이 가진 비밀이 도대체 무엇일지 실체를 궁금하게 하면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고 <해빙>의 재미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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