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김영란법 개정 후 희비(喜悲) 엇갈린 '설명절'

사회 / 김영훈 / 2018-02-14 15:49:58
구체적 판례 확립되기까지 상당기간 동안 후폭풍 지속될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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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매거진=김영훈 기자] 2018 무술년(戊戌年) 설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새롭게 개정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이 공직자와 시민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16일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 주재의 국무회의에서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을 상정ㆍ의결했다.


개정된 시행령에 따라 공직자 등에게 줄 수 있는 선물 중 농축산물에 한해 기존 5만원 에서 10만 원까지 가능하도록 상향 조정됐으며 경조사비는 현금 기준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낮아졌다. 직무관련이 없으면 100만원 까지, 직무 관련이 있으면 조의금은 5만원, 화환ㆍ조화는 10만원까지 줄 수 있다. 상품권은 액수에 관계없이 제공을 금지했다.


상품권 등의 유가증권은 현금과 비슷하고 사용내역 추적이 어려워 부패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단 상급공직자가 하급공직자에게 격려차원으로 주는 경우는 제외된다.


사실 이번 개정의 주된 원인은 농축수산물, 화훼농가의 매출감소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 때문이기도 하다. 정부는 설을 앞두고 상한액을 높여, 값싼 수입산 농산물보다 비교적 비싼 국산 농산물의 소비를 늘리고, 소비자들의 줄어든 지출도 높이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개정된 김영란법으로 지난해 급격히 위축됐던 소비 심리가 명절 대목을 맞아 다시 회복세로 돌아설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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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연합뉴스


김영란법 개정효과…웃음 꽃 핀 유통업계
자취감췄던 한우선물세트 모습 드러내


청탁금지법 첫 시행 후 지난해 추석에 직격탄을 맞았던 유통업계는 농축수산물 가액 상향으로 올해 설에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최근 설을 앞두고, 백화점 및 대형마트에서는 농축수산물 선물 상한액 10만원에 맞춘 다양한 선물세트를 구성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판매량이 크게 늘면서 판매업계나 축산 농가들은 개정안을 반기고 있으며, 소비자들도 물론 선택의 폭이 넓어져 긍정적인 반응이다.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추석까지만 하더라도 멸치, 김, 커피 등에 국한됐던 5만원 미만 상품을 명절 대표 선물인 소고기, 굴비, 사과, 배 등으로 확대했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선물 5만원 제한 규정에 묶여 자취를 감췄던 한우 선물세트를 10만원에 선보인다. 현대백화점이 10만원짜리 한우 선물세트를 선보이는 것은 5년만에 처음이다. 이 세트는 명절 선물 판매 기간 고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부위인 불고기(0.9kg)와 국거리(0.45kg)로 구성했다.


농수산물도 5만원대 이상의 선물세트가 잘 팔렸다. 프리미엄 선물로 손꼽히는 굴비는 37% 신장했고, 갈치/옥돔선물세트(23%)도 판매가 증가했다. 인공재배가 되지 않아 희소가치가 높은 송이버섯세트(23%)와 지름 3cm 이상 되는 고품질의 제품들을 선별해 7~9만원대로 구성된 더덕선물세트(16%)도 오름세를 기록했다.


롯데백화점 역시 설 선물 판매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6일까지 전체 선물세트 판매 실적은 지난해 설 행사보다 평균 22% 가량 신장했다. 롯데백화점 한 관계자는 "김영란법 개정의 효과로 농산물과 수산물 축산물 등 전통적인 명절 인기 품목이 골고루 판매가 늘면서 명절 시장 전체가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며 "한우 등 다양한 금액대 선물세트가 나오면서 오히려 선택의 폭이 크게 넓어져 백화점 매출을 견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반면 지난해 불티나게 팔렸던 합리적인 가격대의 실속형 선물세트 인기는 다소 수그러들었다. 한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성되는 돼지고기세트는 19% 성장에 머물렀다. 1~3만원대가 주를 이루는 멸치선물세트도 11% 증가하는 데 그쳤다. 고등어 선물세트의 경우 지난해 보다 23% 줄었고, 가성비가 뛰어나 지난해 인기가 높았던 바디선물세트(-14%)와 생활선물세트(-18%)도 판매량이 소폭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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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손님하나 없는 음식점 [제공/연합뉴스]


최저임금 인상에 김영란법 '직격탄'까지…외식업계 '업친데 덮친격'
음식가액 5만원으로 상향 조정 요구 빗발


개정된 김영란법이 가결됐지만 외식업계는 여전히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식사에 대한 가액 범위가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현행대로 3만원으로 유지했다. 이에 자영업자들은 시름을 넘어 분노에 휩싸였다.


김영란법이 현행 그대로 적용되자 지역 음식점들도 고심이 크다. 수 많은 음식점들은 영업시간을 조정하고 직원을 반으로 줄이는 등 고육지책을 쓰고 있지만 최저임금 인상까지 겹쳐 이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일부 음식점들은 김영란법 직격탄과 인건비 부담의 한계를 느끼고 최악의 경우 문을 닫는 업체들도 속출하고 있다는게 외식업계의 설명이다.


대전 유성구에서 갈치전문점을 운영하는 김모(38)씨는 김영란법 시행후 직격탄을 맞았다고 푸념했다. 김 씨는 "김영란법 시행 후 30% 이상 매출이 떨어졌다"면서 "지난해부터 명절 특수는 없어졌따.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암울할 뿐이다"고 하소연했다.


부산 중구에서 전복식당을 운영하는 이모(52)씨는 "이번 개정안을 보면서 또 자영업자들은 외면당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다"며 "법안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선물비 기준을 올리듯 식사비도 올려야 형평성이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산하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공개한 '김영란법 시행 1년 국내 외식업 영향조사'에 따르면 외식업체 66.2%가 김영란법으로 매출이 줄었다고 답했다. 이들 업체들이 밝힌 매출 감소율은 22.2%였다. 업종별로 보면 한식당 68.8%가 매출이 줄었다고 답했고 이어 일식 66.7%, 중식 64.3%로 순으로 나타났다. 매출 감소율에 있어서는 일식이 35.0%로 한식 21.0%, 중식 20.9%보다 월등히 높았다.


김영란법 시행 전후의 고객들의 소비행태를 비교해보면, 고객 1인당 평균 지출액은 3만원 이상인 경우가 시행 전 37.5%에서 시행 후 27.2%로 10.3%포인트 줄었다. 반면 여럿이 와서 각자 계산하는 더치페이는 시행 전 23.9%에서 38.5%로 14.6%포인트 늘었다.


외식업체들은 경영난 타개를 위해 '종업원 감원(22.9%)', '전일제 종업원의 시간제 전환(11.7%)', '영업일 혹은 영업시간 단축(12.5%)'등 주로 인건비 절감을 위한 조치를 취했다고 답했다. 이어 '메뉴 가격 조정' 20.6%, '식재료 변경' 7.3%로 나타났다.


한국외식중앙회는 식사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인상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향후 식사비에 상한액이 5만원으로 인사욀 수 있도록 계속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신훈 한국외식업중앙회 정책국장은 "외식업과 함께 가야 농축수산물도 발전하는데 이번 결과에 대해 많이 아쉽다"며 "외식업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봉준수 한국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 사무국장도 "농축산물만 예외로 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면서 "식사비 상한액을 폐지하거나 상향 조정해달라는 요구를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매출에 직격탄을 맞은 외식업계는 그동안 시행령 폐지와 더불어 상한액 인상을 주장해왔다. 매출이 김영란법 시행 이전 보다 20% 급감했다는게 외식업계의 주장으로 현재 매출이 더디게 회복은 되고 있지만 법 시행 이전으로 회복되려면 식사비 인상이 불가피하다는게 업계의 판단이다.


반면 우리나라 국민 90%는 김영란법이 우리 사회 청렴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말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에 대해 법이 제대로 안착되기도 전에 성급하게 칼을 댄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를 금지해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법 취지가 훼손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부정청탁 금지법 시행령 제45조는 가액 범위와 관련해 2018년 말까지 타당성을 검토한 이후 식대, 선물, 경조사비에 대한 기준을 재검토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송준호 국민권익위원회 자문위원은 "청탁금지법이 시행 1년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시점에 가액기준을 조정하는 것은 법 시행령상의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고 시기 상조"라고 지적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김영란 법이 개정되면서 구체적 판례가 확립되기까지 상당기간 동안 후폭풍은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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