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매거진=배정전 기자] 1981년 영국 런던 브릭스턴은 인종과 계급 차별에 항의해 흑인들이 중심이 돼 벌어진 폭력사태로 불탔다. 자메이카계 흑인 밀집지역에서 지역주민들 간 일어난 싸움을 경찰이 과잉진압한 것이 계기였다. 이 사건은 당시 신자유주의 기치를 내걸고 국유기업의 민영화 추진 등으로 노조와 대치하며 강경 노선을 걸었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동일시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데이비드 캐머런 현 총리에게도 똑같은 이미지가 겹쳐지고 있다고 9일 보도했다. 런던 토트넘에서 시작된 폭동이 닷새째 이어지며 좀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30년 전 브릭스턴의 레일턴 거리는 지금과 같이 폭력으로 가득했다. 가디언은 30년 전 브릭스턴 폭동에 대한 조사결과 보고서가 사태의 원인을 “젊은 흑인들의 경찰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터져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고 보도했다. 당시는 경찰이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으로 과잉진압을 하던 시기였다.
이번 소요사건의 발단도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마크 더건(29)이라는 흑인이 사망했다는 의혹이다. 물론 더건 사건의 경위는 경찰이 아직 조사하고 있어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의 행태는 수년 동안 질적으로 개선됐지만, “거리를 지나면서 수많은 검문을 받는다”는 토트넘 지역 주민의 말은 예나 지금이나 경찰 편견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하지만 이번 폭동에는 더 큰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럼튼대 철학강사 니나 파워는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에서 “시위가 일어난 지역은 빈곤이 심각하고 실업률이 높은 곳으로, 이런 경제적 불만이 경찰을 향한 의심과 분노와 합쳐져 이번 상황에 이르렀다”며 “폭동 뒤에 있는 큰 그림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빈곤 상황 자체도 문제지만 넓어지고 있는 계층 간 격차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국가평등패널의 조사결과 상위 10%의 부자들이 최빈층보다 100배 이상 잘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이런 격차에 대해 1980~1990년대 초반까지 보수당 정부가 주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이번 시위에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영국 정부가 채택한 긴축재정도 한몫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15개월 전 출범한 보수당과 자유민주당 연합정부는 정부 재정지출을 줄이고 복지혜택을 축소하는 정책을 펴왔다. 한 토트넘 주민도 로이터에 “지난 15개월 동안 재정적자로 이 지역은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며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혜택도 끊기고 공공부문 일자리도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켄 리빙스턴 전 런던시장은 “보수당 정부 아래에서의 경기침체와 지출 삭감은 불가피하게 사회적 분열을 만들었다”고 말했다고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폭동 이외에도 영국에서 긴축재정 등에 항의하는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이 반복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학생 수십만명이 벌인 시위도 긴축재정의 일환으로 실시된 교육재정 삭감과 등록금 인상 등에 대한 항의 성격이었다.
한편 캐머런 총리는 10일 경찰이 필요할 경우 물대포를 사용하는 비상계획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는 TV로 방송된 성명을 통해 “우리는 거리에서 법과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할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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