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와 아름다운 음악의 역설, 도가니·블라인드

미선택 / 뉴시스 제공 / 2011-09-30 12: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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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는 음악을 사랑한다?

청각장애아를 대상으로 한 파렴치한 성폭력을 고발,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도가니'와 강호순 사건을 연상시키는 내용으로 지난 여름 스릴러 바람을 일으킨 영화 '블라인드'의 성범죄 현장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음악'이다.

'도가니'에서 교장(장광)이 청각장애와 지적장애를 모두 지닌 '유리'(정인서)를 교장실 안에서 성폭행할 때 흐르는 음악은 조성모(34)의 '가시나무'다.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라는 영화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가사와 애절한 창법이 어우러져 욕정에 사로잡힌 악인에게 짓밟히는 여린 영혼의 아픔을 절절히 드러냈다.

'블라인드'에서 소시오패스 살인마 '명진'(양영조)은 고급차를 이용해 여성을 납치, 자신의 집 지하실에 가두고 성폭행한 뒤 살해한다. 명진은 이때마다 음악을 튼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68)의 노래로 유명해진 스페인 민요 '라 팔로마'다. 여성의 간드러지는 코러스와 이글레시아스의 감미로운 저음 등 여성을 유혹하기에 좋은 노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엄습하는 공포의 신호가 된다.

'도가니'의 '가시나무'는 영화 후반 법정 신에서는 감동을 일으키는 매개로 바뀐다. 청각장애로 듣지 못하고 말할 수 없는 '연두'가 노래의 선율에 따라 작지만 강건한 손짓을 할 때 관객들의 마음은 격동친다. 영화의 원작인 공지영(48)씨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에는 '조성모의 노래'라고만 명기돼 있다.

황동혁(40) 감독은 "사실 그 부분을 읽었을 때 바로 '가시나무'를 떠올렸다. 조성모의 노래들은 사랑 노래가 많아 성폭행 장면에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가시나무'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면서 "'가시나무'는 하덕규가 부를 때부터 좋아했던 노래인데 가사에 교장실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과 그 일을 법정에서 증언해야 하는 아이의 심경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가시나무'를 영화에 삽입하는 것은 가시밭길이었다. "원곡자인 하덕규씨는 청각장애아동들이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과 법정 장면에서 노래가 쓰인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거절했다. 꼭 사용하고 싶어서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고 설명했다. 허락하지 않으면 무릎 꿇고 빌어서라도 써야 한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블라인드'의 '라 팔로마'는 직업이 산부인과 의사인 명진이 아무 죄의식 없이 불법 낙태시술을 할 때도 듣는 노래다. 영화 후반 명진이 '수아'(김하늘)를 해치려고 고아원에 침입했을 때 아무도 없는 거실에 이 노래를 틀어놓고 수아를 유인, 관객들을 공포로 몰아 가는 구실을 한다.

안상훈(36) 감독은 "명진이 음악을 들으며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설정한 것은 명진의 범죄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유희의 일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유영철 사건에서 유영철이 살해한 여성들을 토막낼 때 음악을 들었다는 수사 기록을 떠올렸다"고 귀띔했다.

'라 팔로마'가 선택된 것은 우연이었다. "별의 별 곡들을 다 생각해봤다. 1920~30년대 '사의 찬미'처럼 레코드판이 찍찍거리며 돌아가는 것도 생각해봤고, 모차르트 '레퀴엠'도 떠올렸다. 그러다 음악감독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를 추천했다. 중년인 데다 수천명의 여성과 염문을 뿌린 바람둥이로 유명한 그의 노래 중에서 찾아봤다. 그러다 우연히 '라 팔로마' 라이브를 듣다가 여성들의 코러스에 이어 그의 미성이 나오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그렇다고 이글레시아스의 노래를 쓸 수는 없었다. 다행히 '라 팔로마'가 스페인 민요라 저작권에서도 자유로워 송준석(35) 음악감독이 화면의 편집과 연기자들의 액션 등 영화의 흐름에 맞춰 리메이크해 삽입했다. 노래는 외국인 남녀가수가 이국적인 느낌과 섹시한 분위기를 살려 불렀다. 안 감독은 몰랐지만 이 노래는 듀오 '빅마마'의 노래로 2004년 멜로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감독 이재한)의 OST에도 삽입됐다. 정우성(38)과 손예진(29)의 아름다운 사랑노래가 '블라인드'에서는 퇴폐향락의 매개로 180도 달라진 셈이다.

22일 개봉한 '도가니'는 대중문화에서 사건사고 뉴스로 전이되며 크게 주목받고 있다. '블라인드'는 8월10일 제작비 100억원대 국산 대작들 틈에서 개봉해 25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으고 있다.

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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