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레랑스(관용)는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축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름을 견디는 것이자, 권력의 강제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종교나 사상이 달라도 그 차이 자체를 다른 그대로 참고 받아들이는 뜻도 포함돼 있다.
똘레랑스 정신이 바다를 건너온 지는 이미 오래지만 한국사회에서 똘레랑스를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특히 날선 풍자와 카타르시스의 장이 돼야할 코미디영역마저 앵똘레랑스(불관용)에 의해 침범당하는 현실은 우려스러울 정도다.
최근 가장 주목을 받은 앵똘레랑스 사례는 KBS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 '사마귀 유치원' 고소건이다. 이 코너에서 개그맨 최효종씨는 '국회의원 되는 법'이란 주제로 국회의원들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당선되고 보자는 식으로 공약(空約)을 남발하는 행태에 신물이 났던 시청자 겸 유권자들은 최씨의 날선 풍자에 배꼽을 쥐었다.
그러나 풍자의 대상이 된 한 국회의원의 생각은 달랐다. 무소속 강용석 의원은 국회의원들의 입장을 대변하겠다며 최씨를 집단모욕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를 지켜본 시민은 '강 의원이 개그를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였다' '하도 웃겨 누가 개그맨인지 모르겠다' 등 소감을 밝히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문제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점이다. MBC 코미디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제작진들은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논란이 한창이던 2008년 7월 방송 중에 '미국산 소 쓰러지듯'이란 풍자성 짙은 자막을 달았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2009년 1월 방송된 개그콘서트 '도움상회' 코너 출연자들은 대운하 예산·형님예산에 항의하며 국회에서 농성하던 야당의원들을 "어설픈 격투실력으로 국제적으로 개망신을 시키네요"라며 비난했다가 일부 야당 지지자들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했다.
정치풍자에 대한 최근의 알러지반응은 군사정권 시절에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심지어 1980년대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도 개그맨들은 '유머1번지'의 '네로24시'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등 코너를 통해 지배계급의 정통성 부재와 무능을 꼬집을 수 있었다. 이로 미뤄볼 때 오늘날 코미디계가 군사정권 때 못지않은 엄숙주의와 앵똘레랑스에 포위돼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왈가왈부 시시비비로 떠들썩하긴 하지만 정치풍자가 코미디의 주요속성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박진규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도 "우리네 현실을 비틀고 꼬집는 것이 코미디인데 코미디가 현실에서 벗어나면 재미없고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며 "정치 역시 코미디가 다루는 현실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시련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코미디계의 대부 구봉서씨는 '코미디는 곧 풍자'라고 단언한다. 구씨는 매를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잘못된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는 진실이 담긴 코미디를 해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한 언론과 인터뷰 중 구씨가 남긴 한마디는 정치풍자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요즘 풍자 코미디가 너무 부족한 것 같아요. 사회를 정화하는 역할을 못한다면 코미디의 역할과 의미가 퇴색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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