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 비틀... 사적 대화 소설로 공개한 후폭풍 거세

문학·도서 / 이준섭 / 2020-07-22 10:27:49
창비, 문동 빅 출판사 초유의 소설 환불, 작가상 반납 사태 불러와...

신경숙 논란 이어 양대 문학출판사 부실 대응 또 도마에 올라
▲김봉곤 작가. [제공=문학동네]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봉곤이 제11회 젊은작가상을 반납하고, 도서출판 문학동네와 창비가 21일 그의 모든 소설 작품을 회수함과 동시에 이미 구매한 독자에게는 환불해준다고 발표하는 출판계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환불 대상 도서는 단편 '그런 생활'이 실린 소설집 '시절과 기분'(창비)과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단편 '여름, 스피드'가 실린 소설집 '여름 스피드'(이상 문학동네)이다.

 

이중 ‘제 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9쇄 9만부를 전량 개정판으로 교환하거나 환불하게 되었다. 출판사로서도 타격이 큰 상황이다.

 

성소수자의 삶과 사랑에 대한 자전적 퀴어서사로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 김봉곤이 앞서 지인과 나눈 사적인 대화를 소설에 그대로 인용해 당사자가 작가와 출판사에 항의함으로써 논란이 된 것이다.

 

이날 김봉곤은 피해자와 독자, 출판사, 동료 작가들에게 사과하고 ‘젊은작가상’을 반납했다.

 

사적인 대화를 무단으로 소설에 인용해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논란이 결국 해당 작품의 회수 및 환불과 문학상 반납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작품 내용이나 작가의 처신과 관련한 논란으로 이미 시중에 팔린 문학 서적을 전량 회수하고 환불해주는 동시에 해당 작품으로 받은 문학상까지 반납하는 사태는 국내 문학계에서 처음 있는 일로 전해졌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독자가 가져간 소설책을 환불해주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고, 기성 작가가 받은 문학상을 반납한 사례도 내 기억엔 없다"고 했고, 한 문학평론가도 "내가 기억하기로 이런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출판계에 따르면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문제가 대형 논란으로 커졌을 때도 관련 소설책을 환불하는 조치까지는 가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지난 2015년 신경숙이 단편 '전설'에서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활동을 중단해야 했던 일 이후 문학 작품의 창작 윤리와 관련해 발생한 가장 큰 사건이다.

 

작가와 출판사가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항의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일을 더 키웠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피해자 외에도 젊은 작가와 독자들이 나서 작가와 양대 문학 출판사의 소극적인 대응에 분노하면서 사생활 침해와 관련한 '작가 윤리 문제'를 강하게 제기한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일부 독자와 작가 사이에선 문학동네와 창비에서 발간하는 책 구매나 원고 청탁을 거부하자는 움직임까지 일 정도였다.

 

한 평론가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젊은 독자와 작가들의 경우 신경숙 표절 때보다 이번 사적 대화 도용 문제를 창작자 윤리 차원에서 더 크게 받아들이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면서 "특히 양대 문학 출판사인 창비와 문학동네가 신경숙 사태 때 보여줬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권위적 태도를 이번에도 변화 없이 드러내 젊은 층의 분노를 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지난 10일 자신이 '그런 생활'에 등장하는 'C 누나'라고 밝힌 여성이 자신이 김봉곤에 보낸 성적인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소설에 그대로 인용됐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지난 17일엔 자신이 '여름, 스피드'에 등장하는 '영우'라고 밝힌 한 남성도 과거 김봉곤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이 동의 없이 소설 도입부에 인용돼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파문이 확산했다.

 

'그런 생활'이 가장 먼저 실렸던 문학과지성사의 발 빠른 대응은 문학동네, 창비가 보였던 행보와 대조된다. 2019년 계간 '문학과 사회'에 '그런 생활'을 게재한 문학과지성사는 'C누나'로 알려진 여성이 초기에 문제를 제기하자 일찌감치 온라인 서비스에서 '그런 생활'을 삭제했다.

 

작가가 주변 인물을 소설 속에 등장시켜 사생활과 사적 권리를 침해했다는 논란은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프랑스 작가인 아니 에르노는 '날 것 그대로'를 표방하며 자신의 사생활을 소재로 자전적 소설을 쓰는 대표적 인물이다.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는 1999년 소설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에 친구를 등장시켰다가 사생활 침해로 피소돼 출판금지 조치와 함께 금전적 배상까지 해야 했다.

 

반대로 공지영의 경우 가족사를 바탕으로 쓴 장편소설 '즐거운 나의 집' 연재에 앞서 전 남편이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이를 막으려는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공지영 손을 들어줬다.

 

동성애자임을 밝힌 김봉곤은 2016년 등단 이후 동성애를 주제로 한 사소설(私小說) 형태의 작품을 써왔는데, 이를 스스로 '오토 픽션'이라고 불러왔다.

 

이 사태를 보는 독자들은 작가가 자기만의 언어를 가질 수는 있으나 사생활의 여과없는 게재는 적나라한 자신의 세계에 대한 표현이라 보기 어렵다고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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