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완화 대가로 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 투자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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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데일리-경제만평=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안까지…與野, 본회의 처리 수 싸움 본격화 @데일리매거진 논평中 |
이재명 정부는 지난달 31일 ‘2025년 세제개편안’을 통해 모든 과세표준 구간의 법인세율을 일괄 1%포인트 올리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최고세율은 다시 25%로 복귀하고, 지방소득세를 포함하면 실효세율은 최대 27.5%에 이른다. 정부는 이를 통해 연간 4조3000억 원의 세수를 확보, 초혁신 기술 투자와 재정 건전성을 높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여권과 진보진영은 감세로 약화된 세입 기반의 정상화, 그리고 여전히 낮은 실효세율을 근거로 “경제 충격은 제한적”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야권과 재계는 다른 계산을 내놓는다. 명목세율 인상은 그 자체로 글로벌 자본에 부정적 신호를 보낼 수 있으며, 경기 회복세가 미약한 상황에서 세 부담 증가는 투자·고용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이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인식을 가질 경우, 신인도 하락과 자본 이탈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짙다. 여당 내부에서도 중소기업 부담 증가를 이유로 속도 조절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정책의 효과를 둘러싼 논쟁은 학계와 통계 자료에서도 상반된 결론을 내놓는다. 실효세율은 명목세율과 달리 실제 기업이 체감하는 부담을 보여주는 지표인데, 최근 10년간 최고세율 변동과 투자·고용 지표 사이에서 뚜렷한 상관성을 찾기 어렵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통계가 모든 상황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정책 신뢰와 투자 심리라는 비계량적 요소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장은 단기간 수치로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발 통상 압박은 우리 경제의 부담을 또 한 겹 두텁게 한다. 지난 7월 말, 한·미 무역협상이 타결되면서 8월 1일부터 예정됐던 25% 관세가 15%로 완화되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한국은 3,500억 달러, 우리 돈 약 486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 중 1,500억 달러는 조선 협력 펀드에, 2,000억 달러는 원전·반도체·2차전지·바이오 등 전략산업 투자에 쓰인다. 표면적으로는 ‘선방’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GDP 대비 부담은 일본·EU보다 높은 수준이며, 투자 수익 배분과 관세 경쟁력 측면에서 불리한 조건이 적지 않다.
더욱이 자동차 관세 문제는 뼈아픈 대목이다. 기존 한·미 FTA로 0%였던 한국산 자동차 관세가 15%로 높아져, 일본·EU와 같은 조건이 되었다. 과거의 관세 우위가 사라진 것이다. 이는 대미 수출의 가격경쟁력 약화를 의미하며, 향후 부품 관세나 비관세 장벽까지 감안하면 파급은 더 클 수 있다. 농산물 시장 개방은 피했다지만, 미국의 향후 요구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는 ‘합의의 틀’ 수준이라는 평가가 있어, 2주 뒤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세부 조건이 어떻게 구체화될지가 향후 변수가 될 전망이다.
법인세 인상과 대미 투자 합의, 이 두 사안은 서로 성격이 다르지만, 기업의 재무 구조와 미래 투자 전략에 직·간접적으로 중첩되는 부담을 안긴다는 점에서 한 줄기의 흐름을 이룬다. 국내에선 세 부담이 늘고, 대외적으로는 거대 경제권의 전략적 요구에 맞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 둔화, 금리 불확실성, 환율 변동성이 겹치면, 우리 경제의 취약 부문이 한꺼번에 압박받는 형국이 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책 결정자들의 시야는 단기 재정 수지나 정치적 이해득실에 갇혀서는 안 된다. 세제 개편은 단순한 세율 조정이 아니라, 국가의 성장 경로와 투자 환경을 결정짓는 구조적 조치다. 법인세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그 세수가 다시 민간의 성장 동력을 강화하는 데 재투자된다는 확신을 시장에 심어줘야 한다. 대미 투자는 단순한 방어적 비용이 아니라,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도록 설계돼야 한다.
기업 역시 ‘불확실성의 시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배분할지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정부와의 전략적 소통, 해외 시장 다변화, 공급망 안정화, 기술 혁신 등 복합적인 대응이 필수적이다.
역사는 위기를 견딘 경제가 한층 강해진다는 사실을 반복해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위기 앞에서 눈을 감거나, 단기 처방에 안주한 경제가 아니라, 치밀한 전략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회를 찾아낸 경제였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세율 인상과 대외 압박의 과제는, 단순히 피할 수 없는 부담이 아니라, 경제 체질을 재정비할 시험대가 될 수 있다. 그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지는, 결국 우리 스스로의 선택과 준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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