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과 감정, 정치적 셈법만이 넘실대는 혼탁한 강물처럼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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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균형이다. 그리고 그 균형은 시대적 요구에 맞는 결단 위에 선다. 지금 대한민국 보수 정치권은 유권자의 간절한 요청 앞에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여론조사 1위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승기를 잡을 마지막 기회를 이준석 후보에게는 ‘시중지도(時中之道)’의 길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러나 단일화를 둘러싼 현실은 고집과 감정, 정치적 셈법만이 넘실대는 혼탁한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결국, 누가 중심을 잡고 시대의 부름에 응할 수 있는가. 정치는 타이밍이고, 타이밍을 놓친 정치인은 대의도, 명분도 잃는다.
앞으로 10일 남은 오는 6월 3일 대한민국 21대 대통령 선거가 다가왔다. 민주주의는 선택의 과정을 통해 성숙하며, 그 선택은 다수의 뜻을 반영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한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권, 특히 보수 진영은 이 중대한 시점에 결정적 기회를 흘려보내고 있다. 국민은 다시 한번 실망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상대로, 제3지대와 보수진영은 단일화를 통해 맞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보수 유권자들뿐 아니라 다양한 시민사회, SNS 상에서도 ‘정권 재창출’이 아닌 ‘정권 저지’를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 사이의 단일화 논의는 서로의 계산기만 두드리다가 제자리걸음이다.
25일, 중앙선관위는 본투표용 투표용지 인쇄를 시작했다. 이는 명확한 경계선이다. 이날 이후 후보 간 단일화가 성사된다 해도, 투표용지에는 ‘사퇴’ 표기 없이 기표 대상 후보로 남게 된다. 사전투표가 시작되는 29일을 최종 마지노선으로 본다지만, 시계는 이미 국민의 기대를 향해 무심히 흐르고 있다.
국민의힘은 여전히 사전투표 전 단일화를 희망한다. 김용태 비대위원장은 국민경선 방식의 단일화와 공동정부 구성을 제안했고, 나경원 공동선대위원장은 “분열은 곧 국민의 피해”라며 절박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준석 후보는 단일화에 대해 “망상”, “정신 차리라”는 강경한 표현을 서슴지 않으며 가능성을 완전히 일축하고 있다. 이준석 후보의 이러한 태도는, 정치적 소신의 표현일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이는 공인으로서의 책무보다는 개인의 정치적 입지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단일화는 단순한 정치공학이 아니다. 그것은 유권자에 대한 책임의 실현이자, 국가적 위기 인식에 기반한 정치인의 결단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유권자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내 이념이 아니라, 위기를 막아줄 책임의 정치"라고 외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흐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소폭 하락하는 가운데, 김문수·이준석 두 후보의 지지율이 동반 상승하고 있다. 즉, 단일화가 이루어질 경우 승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접전 양상으로 뒤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권 재창출보다 정권 견제를 원하는 표심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단일화의 필요성이 결코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증거다.
그럼에도 이준석 후보는 기존 정치에 대한 비판을 이유로 단일화 논의를 매도하고 있다.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정치 혁신'이지, '고립된 고집'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일부 세력의 열광적 환호에 취하기보다, 훨씬 더 큰 유권자의 바다 속에서 자신이 짊어져야 할 역사적 책임과 무게를 돌아봐야 한다. 정치인은 결단의 순간에서 위대해진다. 그리고 국민은 그런 순간을 기억한다.
이번 대선은 단지 한 정당의 승패를 가리는 싸움이 아니다. 극단의 프레임과 진영 논리가 정치의 전면에 나선 지금, 유권자는 ‘어느 쪽이 더 적절히 균형을 잡을 수 있는가’를 살피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민주당이라는 간판 너머, ‘내란 단일화’라는 프레임으로 보수 단일화 시도를 공격하는 이유는, 그만큼 단일화가 위협적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보수는 이 유효한 전술조차 스스로 포기하려 하는가?
단일화가 무산될 경우, 누가 가장 큰 피해를 입을까. 단순히 낙선한 후보들만이 아니다. 국민은 대안을 잃고, 정치에 대한 신뢰는 다시 한 번 붕괴될 것이다. 이준석 후보가 고립된 길을 택한다면, 그는 ‘자기 정체성을 지킨 인물’이 아니라 ‘기회를 버린 정치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역사는 단순히 원칙을 외친 사람이 아니라, 적시에 결단하고 책임진 이들의 이름을 기억한다.
이제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29일 사전투표 전까지, 단일화의 골든타임은 마지막 불씨를 간신히 지피고 있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지만, 때를 놓치면 아무것도 아니다. 유권자는 현명하다. 그리고 냉정하다. 더는 늦기 전에, 모든 정치인이 국민 앞에서 진정성을 증명해야 한다. 역사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이 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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