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방콕기행 ③> 서울이 태국의 방콕보다 더 더웠다

남영진의 세상이야기 / 남영진 논설고문 / 2018-08-22 17:06:21
"태국보다 2시간 빠른 서울은 열대야로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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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남영진 논설고문


[데일리매거진=남영진 논설고문] 세월의 흐름은 정확하다. 아무리 더워도 가을은 온다. 입추가 지나자 아침저녁으로 좀 시원한 기가 느껴졌다. 말복을 지나자 밤의 열대야가 없어졌다. 저녁 평균기온이 25도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올해 서울 날씨는 기록이 작성된 이래 114년 만에 최고였다. 최근 최대 열대야기록인 1994년의 44일을 넘어 46일간 ‘불타는 밤’이 계속된 것이다. 세계 날씨뉴스에서는 서울 베이징 도쿄의 낮 기온이 아열대지역인 상하이 홍콩 대만의 타이페이보다 높았다.


지난 7월 태국 방콕으로 놀러갔다. 거의 7년째 여름을 방콕에서 보냈다. 딸이 방콕에 있어 집사람과 같이 가서 골프도 치고 아이쇼핑도 하며 지냈다. 생각보다 생활비가 적게 들어 딸이 4년 전에 서울에 돌아왔지만 이후에도 우리는 싼 비즈니스호텔을 구해 7년째 다녀 왔다. 지난 6년간 대학에 있었기 때문에 학기말시험을 보고 성적사정이 끝난 7월 중순께 가서 1달 정도 지내다 8월 중순쯤 돌아왔다.


지난해 대학을 그만두었지만 이번에도 방콕에 있는 대학 선후배들이 오라고 해서 혼자만 갔다. 집사람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서 함께 가지 못했다. 내가 방콕에 간다고 하니 이번에는 친구들이 말렸다. 올 여름 덥다는데 왜 뜨거운 태국엘 가느냐고... 나는 여름 6,7,8월의 방콕이 서울보다 덜 덥게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말도 안 된다고 “어떻게 적도 가까운 방콕이 서울보다 덜 덥겠냐?”며 말렸다. 서울보다 습기가 적고 하루 한번 소나기(스콜)가 쏟아져 견딜만하다고 내 경험을 설명해도 믿지 않았다.


20일간 태국에서 지내다 7월 31일 귀국했다. 이번에는 처남이 소개해서 대학 친구 2명과 함께 1주일간 골프장에 들어가서 지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대부분의 골프장은 산간이나 해변에 있다. 방콕에서 동북쪽 캄보디아 쪽으로 올라가는 나라이힐 골프장은 너무 시원했다. 낮에 햇볕은 뜨거웠지만 저녁에는 20도 가까이 떨어져 에어컨을 끄고 자야했다. 걱정하던 친구들이 인정했다. 분명히 여기는 서울보다 더 시원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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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하루 한번 소나기(스콜)가 지난 뒤 시원한 태국의 한 골프장 풍경 ⓒ데일리매거진

친구들을 보내고 방콕에서 10일을 더 지내고 귀국했다. 그때까지 서울은 열대야였다. 와서 거의 보름을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지내다보니 ‘시원한 태국’ 생각이 절로 났다. 114년만의 더위라지만 밤에 견디기 힘들었다. 에어컨이 없는 때문이었다. 10여 년 전 고덕동 새 아파트로 입주할 때 집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었다. 그전 대치동 아파트에 살 때도 나는 에어컨바람을 싫어해서 안방에는 틀지 않고 거실과 딸들 방에만 에어컨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딸이 못견뎌했다. 나는 태국에 있고 엄마와 함께 있었던 딸이 반란을 일으켰다. 직장 사무실에서 시원하게 지내다 밤에 들어오기가 싫다는 것이었다. 태국에서 전화로 사정을 들은 나는 그래도 곧 넘어가겠지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방콕에 머무는 비즈니스 호텔에는 시원한 에어컨이 있어 온도를 27도정도로 높여놓고 잠을 잤다. 그런데 ytn kbs월드 등에 나오는 한국 날씨 뉴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거의 40도에 육박하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연신 최고온도를 경신하는 뉴스가 이어져 자세히 아시아 날씨뉴스를 보게 됐다. 집에 보이스톡 전화를 하면 태국보다 2시간 빠른 서울에는 열대야로 잠을 못 이룰 정도라고 했다. 오래된 선풍기 3대를 거실 안방 딸 방에 틀어놓고 지내도 더운 바람이 나온단다. 집사람이 급하게 에어컨을 고칠 방도를 찾아봤지만 손이 달려 1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딸에게 늦게 집에 들어오라고 부탁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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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필자가 촬영한 방콕교외의 나무가 많은 골목풍경 ⓒ데일리매거진


국민들의 짜증이 극에 달했던 지난 8월16일 국립기상과학원은 ‘한반도 100년의 기후변화’ 라는 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는 1912년부터 지난해까지 106년 동안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10년당 0.18도 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0년 동안 이러한 온난화로 한반도는 더 뜨거워졌고, 최근에는 그 속도가 더 빨라졌다는 내용이었다. 그간 자주 나오는 화석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로 인한 복사열 등이 주원인이었다.


이 자료에는 과거 30년(1912~1941년)과 최근 30년(1988~2017년)을 비교한 결과가 실려 있다. 계절별로는 겨울철 최저기온 상승폭이 10년 마다 0.25도로 가장 컸다. 봄(0.24도)과 가을(0.16도)도 상승폭이 컸지만, 여름철은 0.08도로 최고기온 변화가 뚜렷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늦겨울에서 초봄인 2~3월에 서리일수는 10년당 3.4일씩 크게 줄었고, 1월의 결빙일수도 10년당 0.9일 감소했다. 눈에 띄는 건 열대야일수다. 과거 30년에는 7~8월 열대야일수가 각각 이틀을 약간 넘는 수준이었는데, 최근 30년에는 7월은 4일, 8월은 6일을 넘겼다. 10년당 0.9일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 등 혹서가 찾아오는 지역에서 열대야가 잦아진 결과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폭염일수의 장기 변화는 뚜렷하지는 않았다. 올해 서울의 열대야수가 최근 가장 더웠던 1994년의 열대야수를 넘어섰다.

86-87년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로 서울시교육위위원회를 출입할 때 옆에 있는 기상청을 같이 담당했었다. 87년에는 한국에 셀마 등 a급태풍들이 몰려와 거의 20여일을 사회부서 야근을 할 정도였다. 작은 태풍 때문에 피해가 크고 비피해보다 냉해가 염려될 정도였다. 이상기온을 표현하는 겨울의 이상난동, 3한4온의 실종, 아열대화와 열대야, 게릴라장마, 장마실종, 엘니뇨 라니냐 현상 등 이상기후를 표현하는 용어로 잘 모르는 현상을 설명하기도 했다. 핑계 안된다.기후변화는 단순히 기온이 상승하는 것만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고 극단적인 날씨로 나타난다. 한반도에서 최근 10년간의 변화는 종잡을 수 없다. ‘마른 장마’가 생기고,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6년 째 한반도에 상륙하는 태풍도 끊겼다. 여름철 기온은 상승하고, 겨울철 기온은 오히려 더 내려가기도 했다. 온난화로 북극이 더워지면서 찬 공기가 풀려나와 한파가 찾아왔다는 분석도 있다.


기온이 1-2도 올라간다고 해서 세상이 급격히 바뀌겠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의사 친구말로는 인간의 평균체온이 0.5도 올라간다면 전 세계의 의료시스템을 모두 바꿔야 한단다. 그만치 심각한 기온상승이다. 내년에는 에어컨을 설치하고 방콕에 다녀와야 한다. 딸에게 너무 미안하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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