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방콕기행-⑦> 길거리에서 공양받는 태국 승려들...비만이 문제

남영진의 세상이야기 / 남영진 논설고문 / 2018-09-29 12:56:36
예불이나 명상 등 움직이지 않는 생활 때문에 운동량이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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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남영진 논설고문


[데일리매거진=남영진 논설고문] 지난8월 중순 미국의 뉴욕타임즈 지는 “태국 승려들 절반 이상이 비만증으로 당뇨, 고혈압등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 신문은 태국 건강관리당국이 지난6월부터 승려들의 비만을 통제하기 위해 전국사찰에 경고조치를 취하고 주민들에게도 건강식 위주로 공양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보도했다,

태국의 한 대학은 태국의 승려들 중 50%이상이 비만이며 40%이상이 콜레스테롤, 25%이상이 고혈압, 10%이상이 당뇨병 증상을 겪고 있다고 발표했다.


소승불교의 원조 격인 스리랑카에서도 승려 비만이 사회문제로 되어있다. 2012년 스리랑카정부는 의료전문가와 영양학자의 조언을 받아 공양 음식의 종류에 관한 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태국정부도 지난 2016년 비만 승려들의 건강관리를 위한 시범교육을 실시해 62명의 승려가 건강을 회복한 적이 있다.

불교신자가 90%를 넘는 태국은 물론 근처의 라오스, 캄보디아, 북부의 미얀마, 베트남까지 불교신자가 많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출가해 승려가 되면 우리 고려시대처럼 일을 하지 않고 신자들의 시주로 살아간다. 낮12시를 넘어 음식섭취를 못하는 계율 때문에 아침식사가 중요하다.

공양하는 불교신자들은 승려에게 좋은 업보를 쌓는 것이라 생각해 집에서 만든 음식이 아니라 단맛 음료나 과자 등 전문 상점에서 파는 발우 음식을 사서 공양한다. 게다가 예불이나 명상 등 움직이지 않는 생활 때문에 운동량이 적어 적은 음식 섭취에도 쉽게 비만이 된다.

아직도 라오스의 옛 수도인 루앙프라방의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새벽 탁발행사는 외국 관광객들이 길에 나와 관람하는 인기 있는 의식 중의 하나다. 3년 전 루앙프라방에 갔을 때 새벽에 나가니 공양음식을 파는 장사꾼이 공장에서 제조한 공양음식을 팔았다.

주민 일부는 집에서 쌀밥을 지어와 조금씩 떼어 50여명의 승려들에게 조금씩 떼어서 바쳤다. 태국의 방콕에서도 새벽에 시장거리나 심지어 차길거리까지 승려들이 하얀 텅스텐 통을 들고 꽃이나 음식을 공양을 받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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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필자가 촬영한 태국의 한 마을 길에서 공양을 받는 승려의 모습 ⓒ데일리매거진


지난 7월 태국북부 창라이에서 장마로 물이 불어난 동굴에 갇혔다가 10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던 유소년 축구단 소년들의 첫 공식행사는 머리를 깎고 승려생활을 한 것이었다.

전 세계적인 사건으로 매일 tv와 유튜브로 생중계되던 동굴생활과 구조장면에서 빨간 사리를 입고 조용히 절에 들어가 승려생활을 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태국이 불교국이며 국민들의 불심이 깊다는 인식을 세계에 심어주었다.

태국인은 집에서 태어나지만 죽어서는 모두가 절로 간다. 태국의 절 안에 화장터가 있어 업을 다한 사람의 육신을 화장하고 이 영혼을 받아들여 쉬게 하는 장례의식이다. 그래서 태국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태국의 불교를 이해해야 한다. 인구의 약 90%가 불교신자다.

불교는 알다시피 석가모니의 나라인 인도북부의 룸비니지방에서 시작했지만 현재 인도에는 힌두교도가 대부분이고 불교신자가 거의 없다.

석가모니를 힌두교 시바신의 한 아바타로 믿는 힌두교도들이기에 불교도 힌두교의 일부로 보고 있다.

인도북부에서 시작해 BC 2세기경 사자왕 아쇼카왕때 페르시아와 중국 접경인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중국으로 전해졌다.

아프카니스탄, 그리고 인근의 부탄과 중국이 점령한 티벳, 그리고 달마스님 시대에 중국으로 전해진 대승불교는 몽골과 한국 일본까지 퍼졌다. 그리고 남방불교는 스리랑카로부터 시작돼 13세기부터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등 인근국으로 펴져 소승불교가 됐다.

13세기 첫 타이왕조인 수코타이왕국이 시작될 때부터 불교는 국가의 지배적 종교로서 발전해 왔다.

타이 사회의 구심점에 있는 왕실의 후원을 받아온 불교는 엘리트 사회의 이념적 정체성의 바탕을 형성해 왔을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일상생활을 지배해 왔다.

국왕은 불교의 수호자며 사원을 유지시키는 의무를 가진 것으로 인식됐다.

태국의 헌법에 “국왕은 불교도이며 종교들의 수호자”라는 조항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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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필자가 촬영한 태국의 한 대학구내에 모셔 놓은 커다란 불상이 있는 예불당 모습

제정일치격인 국왕을 비롯한 왕실에 있는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절하는 사람은 승려 밖에 없다. 태국 국왕의 공식 명칭은 아직 옛 인도 불경에 나오는 ‘라마’(RAMA,불왕)로 불린다.

승려는 국왕 앞에서도 절하지 않는다. 승려가 엎드려 절해야 하는 대상은 부처님뿐이다. 이러한 승려가 거처하는 사원은 태국사회에서 일반 대중에게 교육기관, 의료기관, 사회복지기관 등과 같은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요즘도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사원 안에 있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불교의 계율을 익힌다.


그리고 불교를 받아들인 아시아 대륙에 위치한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태국 불교도 태국의 문화적 환경에 기막히게 잘 적응하여 어떠한 선교학적 이론과 원리로도 뚫고 들어갈 수 없는 혼합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태국의 불교는 소승불교라고 하지만 힌두교인 브라만교적 성격과 정령숭배적인 요소들이 혼합되어 일반 백성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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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필자가 촬영한 태국의 한 집에 모셔 놓은 제(際)를 올리는 사당의 모습


원래 태국도 초기에는 대승불교를 받아들였으나 약 1300년경 수코타이 왕국의 람캄행 왕이 크메르제국의 막기위해 스리랑카로부터 소승불교를 받아들였다. 이 랑캄행왕이 불경을 쓴 산스크리트어(범어) 글자를 조금 단순화해서 현재 태국글자를 만들었다.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팔리어 등 고대 페르시아, 인도지방의 글자가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하메드의 교시인 ‘꾸란’을 적은 아랍어 글자와 비슷하다.


방콕 도심에서 북동쪽인 민부리시까지 가려면 1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수로를 따라 작은 배를 탔다. 방콕의 국제공항이 북서쪽인 돈무앙 공항에서 수완나폼 국제공항으로 바뀌면서 이 수로는 운송용도가 없어졌고 옆에 4차선 랑캄행로가 생겼다.

입구에 있는 랑캄행대학을 따서 도로명이 지어지고 체육부, 박물관, 체육관등 공적 기구들이 들어서있다. 주위는 서민들이 많이 산다. 캠퍼스를 구경하면서 교문 옆에 불교사당이 눈에 띄었다. 태국에서 랑캄행대왕은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같은 존재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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