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일리매거진=남영진 논설고문] 태국에는 현재 110여개의 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들이 성행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승전국인 미국에 합류한 태국에는 1951년부터 유엔의 국제기구가 필리핀 마닐라에서 태국 방콕으로 옮겨감에 따라 주재원이 늘어나면서 국제학교도 늘기 시작했다.
태국이 80년대부터 동남아국가연합(ASEAN)의 중심국이 되어 외국 상사 주재원이 급증화고 UNESCO(유엔교육과학문회가구)의 아시아본부가 자리 잡으면서 국제학교의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
이로써 중세 아유타야 왕국(A.D. 1350~1767)을 건립한 우텅왕이 왕을 신격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불교사원에서 국민교육을 시행해오던 전통교육이 많이 줄어들고 국제화교육이 본격화 한 것이다. 우텅왕은 이웃 크메르 왕국으로부터 힌두교와 불교교리가 잘 혼합된 복잡한 왕실 용어와 의식들을 정비했다.
국왕은 고대 인도의 종교왕인 라마(RAMA)로 신격화했다. 국왕숭배는 태국인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민간신앙인 정령신앙과 잘 맞아 종교적으로도 완벽한 왕으로 보는 전통이 이어져왔다.
특히 1990년대부터 태국인 학생도 국제학교 입학이 가능해져 태국의 초등교육은 아유타야왕조, 방콕의 차끄리 왕조까지 이어진 불교식 교육의 범위를 벗어나 세계화의 길을 걷게 됐다. 우리나라도 고려시대 시가지에 국교인 불교사원이 있어 마을 안에 있는 사원에서 어린이들을 모아 불경과 예의범절을 가르쳤다.
조선시대에 와서 불교대신 서당이나 향교에서 공자, 맹자, 주자의 유학(성리학)의 사서삼경과 주자가례 등을 가르친 것과 비슷했다.
▲사진=필자가 촬영한 방콕시내의 한 카톨릭 수녀원, 시내에는 기독교 계통의 병원과 학교가 많이 있다. ⓒ데일리매거진
이 국제학교는 우선 미국, 영국식의 영어를 기초로 하는 곳이 많다. 태국 교육부에서 인가를 받은 국제학교는 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교육하는 학교를 말한다. 이 과정이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운영되며 기숙사형과 비기숙사형이 있다. 미국 영국식 외에도 오래전부터 프랑스식 독일식과 아시아에서 가장 교류가 많은 일본식이 많은데 최근에는 한국어 열풍으로 한국 외국인학교가 늘어났다.
방콕 창마이 등 한국어 학교가 50여 곳에 달한다. 이곳을 졸업하고 한국대학에 오려면 소정의 시험을 거쳐야 한다.
▲사진=필자가 촬영한 방콕시내의 한 카톨릭 수녀원 입구 ⓒ데일리매거진
이제 태국에서의 한류에 이은 한국어 열풍은 장난이 아니다. 현재 태국의 대학은 물론 중고등학교까지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이 150여 개교 3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런 한국 열풍에 힘입어 태국에서 우리나라의 서울대학과 같은 위치의 왕립 출라롱꼰대에 지난 해부터 한국어학과가 정식 전공으로 채택됐다.
한국어 강의를 듣는 학생도 10여 년 전 5-6명에서 지금은 교양으로 듣는 학생까지 400명이 넘는다.
태국의 한국어 교재가 대부분 성인용이었는데 지난해부터 중등학교용 교과서도 제작됐다.
한류의 영향으로 지난해부터 태국의 수학능력시험(PAT)에 제2외국어 선택 과목으로 한국어가 채택됐기 때문이다.
태국 국제학교의 장점이 다양한 국적의 학생이 모여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이들 간의 인간관계와 동료애로 사회에 진출해서도 계속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서 태국의 교육문화가 크게 바뀌고 있다. 태국에서는 승려는 교사이고 승려가 있는 절은 학교와 같은 곳이었다. 태국어에서 ‘학교’라는 뜻의 ‘롱리얀’이라는 말은 근대 서구식 교육이 시작되면서 생겨난 신조어다. 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사원 안에 초등학교가 많이 있어 절에서 공부를 한다. 일반 남성도 일정기간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 승려생활을 하는데 당연히 소정의 불교학 과정을 이수한다. 마지막 시험에 합격하면 속세에서 배우는 일반 학위에 버금가는 권위를 인정받는다.
▲사진=필자가 촬영한 방콕시내 랑캄행에 세워진 미국계의 브롬스그로브 국제학교 벽면에 붙어 있는 대형 안내판 ⓒ데일리매거진
성인남자가 일정기간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승려로 불법을 익히는 것은 오랜 불교적 전통이다. 태국의 건장한 남자라면 결혼하기 전 건강심사를 거쳐 승려수업을 받는데 이를 ‘부엇껀비얏’이라고 한다. 승려수업을 하지 않은 사람을 ‘콘팁’이라 해서 ‘익지 않은 사람’, ‘사리를 판단할 줄 모르는 미숙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지난 여름 태국 북부 창라이에서 동굴에 들어가 조난당했던 유소년들이 구조되자마자 머리를 밀고 절 생활을 한 것은 이런 전통의 모습이다.
태국에서 사원은 곧 병원이고 사회복지기관 이었다. 글자를 아는 승려들이 주로 민간요법에 관한 서적을 읽고 의학지식을 습득한 후에 주민들의 질병을 치료했다. 그러나 19세기 중엽부터 서양의 가톨릭, 신교 등 종교단체가 학교, 병원과 복지기관을 세워 태국에 진출했다.
또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자비를 베푸는 승려와 사원은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데려다 승려의 심부름을 하거나 절의 잔일을 하면서 공부를 시켰다. 이들은 ‘데카와트’ 또는 ‘아람버이’라 부르는데 오늘날에도 태국 전역의 사원에 적지 않은 아이들이 기거하고 있다. 또 사원은 먹을 것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고 잠자리를 청하는 사람들에게는 잠자리를 제공해준다.
태국의 국제적 위치가 격상하면서 이런 사원의 대국민 교육, 의료, 복지역할을 줄어들고 있다. 그 한 예가 국제학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진=필자가 촬영한 방콕시내의 한 카톨릭 수녀원, 시내에는 기독교계통의 병원과 학교가 많이 있다. ⓒ데일리매거진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이다.
[ⓒ 데일리매거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