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세상이야기/베트남-호치민 기행⑤]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과 호치민의 렉스호텔

남영진의 세상이야기 / 남영진 논설고문 / 2019-03-11 11:07:51
1901년 프랑스식으로 지어진 최고급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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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남영진 논설고문


[데일리매거진=남영진 논설고문] 지난 2월말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예상과는 달리 ‘노딜’로 끝났지만 도널드 트럼프대통령은 베트남에 25조 원 어치의 여객기 등을 파는 ‘빅딜’비즈니스를 하고 워싱턴으로 귀국했다. ‘트럼프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북미정상회담차 하노이에 들르는 김에 베트남의 정상을 만나는 줄 알았는데 1박2일 방문결과는 북한과의 빅딜보다 베트남과의 무역협정에 더 비중이 실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노딜‘이라도 양 정상이 받은 타격이 일반의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것 같다. 양측 내부를 만족시킬 수 없는 '스몰딜'에 합의한 것보다는 나은 '차악'을 택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루 의혹이 제기된 '러시아 스캔들' 관련 특검보고서의 의회 제출이 임박한 상황에서 정치적 돌파구 마련을 위해 외교면에서 무리수를 둔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는 회담장을 박차고 나와 비판 세력의 공격 거리를 제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앞두고 밝은 북한의 미래를 약속하면서도 "비핵화 조치를 한다면"이라는 식으로 단서를 달아 왔다. 김 위원장을 하노이에서 만난 이후에도 "서두를 것 없다.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반복했다. 그는 하노이를 떠나기 전 "언제라도 회담장을 나올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오늘은 준비가 안 됐다"는 말을 남겼다.

'노 딜'로 얻는 성과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더 많다. 일부의 비판을 받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측과 물렁한 거래는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분명히 세계에 전했다. 합의문을 이끌지는 못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핵 실험을 더 이상 하지 않고, 로켓을 발사하지 않는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현상유지만 계속돼도 트럼프로서는 ’싸우지 않고 얻어낸‘ 정치적 승리로 평가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의 폐기를 제시하며 ’전면적인 제제완화‘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당초 영변 핵시설의 폐기에 ’일부‘ 제재완화를 요청할 것이라는 전망보다 더 세게 나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답은 "영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였다. 트럼프는 전면적 제재완화를 위해서는 핵 리스트 신고, 고농축 우라늄 시설 해체, 영변 외에 기타 핵시설 해체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제재해제는 '완전한 비핵화'와 등가교환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3시간이 넘는 확대회담 끝에 김 위원장은 "그 정도는 준비가 안 됐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측 실무회담을 거치면서 만들어온 합의문이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사인하지 않았다.

미국 워싱턴 D.C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하노이까지 온 트럼프 대통령이 빈손 귀국을 택할 것이라는 예측은 김 위원장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의 문을 열어뒀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을 '좋은 친구'로 칭하면서 "제재 규모를 더 확대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며 "빠른 시일 내에 김 위원장을 만나길 희망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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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호치민시내 중국풍 오피스텔


이번 정상회담이 열린 5성급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하노이(Sofitel Legend Metropole Hanoi)호텔에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2017년 APEC 정상회의 때 여기에 묵으며 미국주도의 무역전쟁을 수행한바 있다. 하노이 중심 호안끼엠(換劍) 호수옆 응오꾸옌 거리에 있는 이 호텔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인 1901년 프랑스식으로 지어진 최고급 호텔이다.


베트남전 당시 이 호텔을 다녀간 유명 인사들로는 찰리 채플린, 제인 폰다, 미국의 반전가수 존 바에즈가 있다. 전후엔 조지 H. W. 부시 대통령,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묵었다.


1956년 프랑스로부터 월맹이 독립하자 ‘통녓’(통일) 호텔로 개명됐다가 1974년 이름대로 월맹이 월남을 통일한 뒤 1987년 프랑스 풀먼 호텔 체인이 베트남 정부와 합작 투자하여 메트로폴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여기에 유명한 곳이 피난소. 1960년대 미국의 폭격으로부터 고객을 보호하기 위해 폭탄 피난소가 건설됐다. 할리우드의 유명배우인 헨리 폰다의 딸이자 베트남전 반전주의자 여배우 제인 폰다가 1972년 6월 하노이 여행 중 이곳에 체류했다.


미국의 반전여가수 존 바에즈도 1972년 12월 미국 대표단과 하노이를 방문해 메트로폴호텔 인근의 호아빈 호텔(Peace Hotel) 근처에 머물면서 미국 전폭기의 크리스마스 폭탄 테러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녀는 공습 중에 호텔방에서 그녀의 노래 “Where Are You Now, My Son?”을 녹음했는데 폭격소리가 녹음 중 삽입돼 노래의 현장감을 더욱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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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프랑스식민시대 지어진 호치민시의 관청


미국의 존슨 대통령시절 월맹군이 미국의 구축함을 통킹만의 공해상에서 선제공격했다는 빌미로 이른바 대대적인 ‘통킹만 사태 북폭’을 퍼부었던 시기의 이야기다.

뉴욕타임즈가 1971년 미 국방성이 월맹의 미국 군함 포격사건을 거짓으로 만들어 ‘북폭’의 명분을 만들었다는 기밀문서(pentagon papers)를 입수해 특종 보도했다. 이로써 월남전 반대여론과 데모를 격화시켰고 존 바에즈 같은 반전주의자들에게 반대명분을 제공했다.


미국 정부는 처음에는 뉴욕타임즈의 보도를 부인하다가 결국 통킹만 사태가 국방성 기밀문서를 폭로하자 미군의 조작사건이라는 사실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궁지에 몰린 닉슨대통령은 1972년 미국령 괌에서 달러의 금태환정지라는 폭탄선언(닉슨독트린)으로 세계경제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뒤 키신저 국무장관으로 하여금 베트남 전쟁에서 빠져나올 출구전략을 마련토록 했다. 73년 미군철수 뒤 1년 만에 월맹군이 사이공을 점령했다.

베트남인들에게는 하노이는 무력통일을 추진한 혁명의 수도이다. 그에 반해 프랑스식민지에 이어 미군의 총사령부가 있던 사이공은 ‘동양의 파리’라고 불렸다. 자본주의가 만개한 타도 대상인 도시다. 월맹군은 점령 후 군인과 경찰, 관리들을 처형, 지식인들을 투옥하고 자본가들을 시골로 쫒아내 사이공을 호치민시로 바꾸었다.

전쟁당시 하노이의 메트로폴 호텔보다 미군장교 클럽이 있던 사이공의 렉스(REX)호텔이 훨씬 붐볐다. 그러나 지금은 바뀌었다. 메트로폴이 훨씬 유명세를 타고 있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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