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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매거진=남영진 논설고문] 4월4일 밤과 5일 오전에 걸쳐 속초와 강릉의 옥계, 동해의 망상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산불의 피해가 심각하다. 사망 1명에 이재민만 1천여 명이다. 다행히 태풍에 맞먹는 바람인 ‘양간지풍’(襄杆之風)은 화재 다음날 오전에 멈추었다. 정부의 발 빠른 대응으로 전국에 있는 소방차와 소방공무원, 그리고 새벽부터 소방헬기가 진화작업에 투입돼 일단 주불부터 껐다. 산불 1주일 전 미국 시카고에서 처 외삼촌부부와 아들부부, 3자녀들을 모시고 경주부터 동해안을 거쳐 바로 이 지역을 다녀와 불탄 흔적이 더 처절해 보인다.
이 지역에 친구 둘이 살고 있어 더욱 안전이 궁금했다. 대학 때 서클활동을 같이했던 동기가 대기업 임원을 지내고 아예 속초 영랑호 호반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고등학교 친구는 10년 전부터 속초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4일 서울 프레스센터서 신문의 날 행사에 참석한 뒤 지인들과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고 일찍 귀가했다. 뉴스속보에서 ‘속초에서 산불’이라는 스팟을 봤지만 항상 봄에 일어나는 영동지역의 산불정도려니 생각했다.
9시 긴급뉴스가 급박했다. 신불지역을 보니 얼마 전 미국친척들과 같이 방문했던 미시령 주변이었다. 미시령 일성콘도 앞 도로에 있는 변압기에서 발화해 ‘워터파크’로 유명한 한화콘도 옆에 있는 ‘대조영’촬영지를 태우고 속초시내 영랑호쪽으로 비화하고 있다는 속보였다. 서풍이라서 친구가 사는 딱 그 아파트근처로 갈 것 같았다. 지난해 집사람과 함께 친구 아파트서 지낸 적이 있어 이 지역의 지리가 훤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지나서야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집은 괜찮아?”라고 묻자 “지금 바빠. 청초초교로 대피중인데 가서 전화할게.” 예상이 적중했다. 바람의 방향이 미시령에서 영랑호를 거쳐 서울 사람들이 설악산에서 생선회를 먹으러 잘 가는 장사진이나 아야진 쪽으로 북동진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에서 주민들이 방송국에 보내온 핸드폰 동영상을 보니 그냥 산불이 번지는 것이 아니라 대보름날 갈대밭 태우듯 불꽃이 하늘에 비화(飛火)하고 있었다.
이어 미시령 내륙 쪽인 인제에도 산불이 났고 대관령 동쪽인 강릉 옥계에서 또 다른 산불이 시작해 동해시의 망상 해수욕장 쪽으로 번지고 있다는 속보가 이어졌다. 또한 부산 포항 심지어 충남의 아산지역까지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이어졌다. 1주일 전 태백산맥의 동쪽인 영동지역에서 비를 봤기 때문에 그렇게 가물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됐다. 같은 날 출발지인 남쪽 경주에는 벚꽃이 피지 않았는데 오후에 강릉부터 양양까지 길가에 벚꽃이 꽤 피어있어 ‘이상고온’이려니 생각했다.
우리가 들렀던 1주일 전 3월28일만해도 양양엔 촉촉한 비가 왔다. 서울에서 렌터카로 내려가 경주를 들러 보문호반 대명콘도에서 1박한 뒤 맑은 날씨에서 동해안을 따라 북상했는데 양양에 도착할 때는 비가 꽤 내렸다. 경주서 동해안의 포항 쪽으로 나가 7번 국도를 타고 영덕, 삼척, 동해, 강릉을 거쳐 양양의 솔비치 콘도에 묵었다. 오전에 경주박물관을 갈 때는 화창하던 날씨가 북쪽으로 올라와 삼척에서 동해고속도로로 갈아탈 때부터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솔비치에 도착하자 미국 조카들인 엘렌, 앤드류, 노라 3남매는 흐린 날씨에 바닷바람까지 불어 실망한 표정이었다. 동해안의 모래해변을 기대했던 그들은 수영복까지 챙겨왔는데 날씨가 흐리니... 다행히 오기 전 주문진 수산시장에서 동해 대게로 푸짐한 저녁식사를 해 아쉬움을 대신했다. 다음날 호텔 뷔페서 아침 식사 전에 아이들과 부모 5명이 파도치는 해변에 나가 머래톱에서 즐겁게 노는 모습이 우리 방에서도 보였다.
오전에 설악산에 가서 케이블카를 권금성으로 보고 미시령으로 올라가 ‘작은 그랜드캐년’이라고 소개한 울산바위를 볼 예정이었다. 그러나 비 때문에 일정을 취소하고 미시령 넘어 중턱에서 잔설(殘雪)이 남아있는 울산바위의 일부분만 올려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양양고속도로를 타고 귀경했다. 그런데 1주일 만에 눈이 남아있던 미시령계곡에서 대형 산불이 휩쓴 것이다.
▲사진=5일 강원 강릉 옥계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번져 동해시 주택가까지 위협하고 있다. [제공/동해 소방서]
TV에서 ‘양간지풍’이라는 말을 처음 들을 때 중학교 지리시간에 배운 태백산맥을 넘는 ‘높새바람’인 줄 알았다. 독일어로 푄(Föhn) 현상으로 배웠다. 습한 공기가 높은 산맥을 넘어가다 산중턱에 걸려 비를 뿌리고 산맥을 넘어서는 공기가 고온 건조해 봄철 가뭄을 가져온다는 그 바람이다. 그런데 높새바람은 북동풍이다. 오호츠크해 저기압이 태백산맥을 서쪽으로 넘어 영서, 경기도, 충청도, 황해도 쪽으로 부는 바람이다. 농민들은 “7월 높새바람이 벼를 말린다.”고 하여 살곡풍(殺穀風)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양간지풍’은 정반대였다. 중국 쪽에서 오는 봄철 이동성 저기압이 영동지방으로 부는 남서풍이다. 한반도를 지나 태백산맥을 동쪽으로 넘어 양양(襄陽)과 간성(杆城)사이로 불어올라가는 고온건조하고 풍속이 빠른 바람이다. 양양에서 북측 간성쪽이 아닌 남쪽인 “양양과 강릉 사이로 부는 바람”이라는 뜻에서 양강지풍(襄江之風)이라고도 한단다. 양양에서는 “불을 몰고 온다.”는 의미에서 예부터 ‘화풍’(火風)이라고도 불렀다. 2005년 4월 양양 낙산사를 다 태운 바람이 양강지풍이었다. 이번에 강릉 옥계, 망상 산불까지 몰고 온 바람이다.
서쪽의 차가운 공기가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상층의 따뜻한 공기가 태백산맥 사이의 좁은 공간을 압축하여 지나면서 풍속이 빨라진다. 산맥을 가파르게 내려가면서 더욱 빨라져 최대 풍속이 초속 46m의 태풍수준이 된다. 공기덩어리 내부의 기압과 기온이 높아지고 습도가 낮아진다. 특히 이번처럼 낮의 해풍보다 밤의 육풍이 속도가 더 빨라서 산에 많은 소나무 숲의 송진과 솔방울이 인화성이 강해 삽시간에 번진 것이다.
강원도(江原)는 영동의 강릉(江陵)과 영서의 원주(原州)를 합쳐 만들었다. 그러나 영동과 영서 사람들의 기질과 풍습이 많이 다르단다. 영동지방 사람들은 농사철에 동풍이 불기를 바랐으나 영서 사람들은 동풍 대신 서풍이 불기를 바랐으니 다를 수밖에. 강원도지사나 국회의원 선거때도 영동과 영서의 지지후보당이 다르다. 그러나 천재지변이 닥치자 최문순 강원도지사를 비롯해 도민들 모두가 똘똘 뭉쳐 이 난리를 잘 이겨내고 있다. ‘청정지역’ 강원을 지켜내기 위해.
특히 양간지풍이 부는 봄철에 대형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간지풍 [襄杆之風] (두산백과)
높은 산을 넘어온 고온 건조한 바람이 부는 현상. 산맥을 경계로 정상으로 향하는 동안 공기는 단열 팽창하여 많은 비나 눈을 내리고 건조하게 된다. 산의 정상을 지나 경사면을 타고 내려오면서 공기는 단열 압축되어 다시 온도가 올라가게 되는데 이 결과로 공기는 지면에 고온 건조한 바람을 불게 한다. 우리나라도 태백산맥을 경계로 푄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네이버 지식백과]푄 현상 (Basic 중학생이 알아야 할 사회· 과학상식, 2007. 2. 20., 이안태)
특정 지역에서만 부는 바람을 지방풍 또는 국지풍(局 地 風)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지방풍 중 대표적인 것이 높새바람이다. 예로부터 북쪽을 ‘높[高]’ 또는 ‘뒤[後]’, 동쪽을 ‘새[沙]’라고 하였다. 즉, 높새란 북동쪽을 가리키고,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높새바람이라고 한다.
내용
높새바람은 늦은 봄에서 초여름에 걸쳐 차고 습기를 띤 한대 해양성 기단인 오호츠크해 고기압이 동해까지 확장되어 정체하다가 태백산맥을 넘어 서쪽으로 불어내리면서 을 일으켜 고온 건조한 바람으로 부는 것이다.
높새바람이 불면 기온이 높아지고, 대기가 건조해진다. 예로부터 영서지방의 농민들은 높새바람으로 인하여 초목이 말라 죽으니 이를 녹새풍(綠 塞 風)이라고 하였고,
『고려사(高 麗 史)』에는 “인종 18년(1140)에 간풍(艮 風: 샛바람)이 5일이나 불어 백곡과 초목이 과반이나 말라 죽었고, 지렁이가 길 가운데 나와 죽어 있는 것이 한줌 가량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강희맹(姜 希 孟)의 『금양잡록(衿 陽 雜 錄)』에는 “영동지방은 바람이 바다를 거쳐 불어와 따뜻해서 쉽게 비를 내리게 하여 식물을 잘 자라게 하나, 이 바람이 산을 넘어가면 고온 건조해져 식물에 해를 끼친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네이버 지식백과]높새바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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