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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매거진=남영진 논설고문] 춘천 중도의 레고랜드 공사 얘기를 많이 듣는다. 반대도 많지만 최문순 도지사가 강원도에 해외관광객을 유치하가위한 고육지책인 거 같다. 최지사는 전기도 안 들어오던 깜깜한 춘성군서 태어나 춘천고, 강원대, 서울대 대학원을 나왔으니 고향에서는 천재 소리를 들었을 게다.
벌써 3선지사인 그를 오랜만에 강원도청 뒤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인 세종호텔 컨퍼런스홀서 만났다. 지난 15일-19일 춘천, 강릉, 동해, 고성, 속초 등지에서 있었던 재외동포 언론사 편집인(재외편협) 초청 국제심포지엄 장에서였다.
이 ‘재외편협’은 한국기자협회에서 해오던 행사를 5년 전부터 사단법인으로 독립해 1년에 2차례씩 국제심포지엄을 하고 ‘해외동포저널’이라는 계간지를 발간해오고 있다. 최 지사는 현관에서 필자를 만나자 예의 순진무구한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니 남선배가 어떻게 여기를 오셨어요?”라며 반겼다. 한국일보 출신인 필자와는 사회부 경찰기자시절 영등포 기자실에서 동고동락했던 옛 친구다. 그는 MBC기자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내고 3번씩이나 도지사에 당선됐다.
이 심포지엄은 해외에서 고생하는 한인동포들의 신문, 방송, 잡지, 인터넷언론 등의 발행인 편집인들을 초청해 주제발표를 하고 한국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친교를 다지고 서로의 어려움을 교류하는 자리다.
그는 중국,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미국, 일본, 유럽, 동남아, 호주 등 30여 개국에서 온 60여명의 한인동포 언론인들을 환영하면서 ‘평화경제시대를 향한 재외동포언론의 역할’이라는 주제에 맞게 “강원도야말로 남북이 분단된 유일한 지자체”라면서 남북강원도가 합쳐야 남북이 통일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평창올림픽 성공덕분에 강원도가 해외에 알려져 한해 300여만 명의 해외관광객이 강원도를 다녀갔다고 밝혔다. 또한 북한 강원도의 도청소재지인 원산이 김정은 위원장의 고향이라 박정남 북한도당위원장이 금강산관광만이 아니라 갈마지구, 명사십리해수욕장, 마식령스키장에 중국, 러시아등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느라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강원도의 156만 인구와 북강원도의 140-170만인구가 합치면 300만이 넘는 큰 도가 되므로 한국전쟁 때 남북이 총을 겨누며 피를 흘렸던 최대격전지 강원도가 세계적인 청정관광지로 새로 태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지사는 “제가 못생긴 감자바우입니다”라고 즐겨 자기를 소개한다. 현재도 서울-양양고속도로 서울-강릉KTX를 타고 국내 1일 관광이 가능하다.
통일이 되면 속초에서 국제크 루즈선을 타고 북한의 나진, 선봉만이 아니라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아직도 일제때 징용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하는 사할린의 교포들까지 만나보고 올 수 있으련만...
심포지엄을 마치고 저녁식사는 강원도의 대표음식인 막국수를 먹으러 나갔다. 메밀전병에 감자전이 막걸리 안주로 나와 오랜만에 참석자들과 회포를 풀었다. 연변, 흑룡강등 중국 동포들은 막국수를 잘 먹었다. 함경도, 평안도 출신들이 만주로 많이 건너갔으니 아직도 연변에 가보면 냉면과 개장국(단고기)가 맛있다. 춘천의 대표적 음식은 닭갈비와 막국수라 이들에게는 입맛에 맞을게다.
▲사진= 경춘선 복선전철화 이전의 춘천역 역사 (현재 철거됨) [출처/위키백과]
춘천역 바로 앞 미군비행장이 있던 지역이 천지개벽을 했다. 택시를 타야 후평동, 명동 중앙로에 닿았다. 70년대만 해도 집 뒤쪽에 양계장이 있어 여기서 닭갈비를 조달한다 했는데 이젠 완전 큰 시장통이 됐다. 집안 먹을거리로 만든 닭장이 비좁아 지들끼리 몸 쌈해서 하루 열댓 마리씩 죽어나가 버리느니 팔기 시작해 닭갈비가 생겼다 한다.
당시는 춘천에서만 먹을 수 있어 배고픈 대학시절 막걸리안주로 숨도 안 쉬고 닭갈비를 발라 먹었는데 이제는 전국 음식이 됐다. 밤중에는 군인들이 종종 담배며 건빵을 가져와 닭과 맞바꿨다고 한다. 강원대학도 유명했지만 도심 봉의산 자락에 성심여대가 있어 5월 축제 때엔 기숙사 오픈행사를 했다. 오픈행사에 미팅초청을 받으면 양복을 빌려 입고 청량리에서 완행열차를 탔다. 대성리를 거쳐 청평, 강촌교가 보이면 벌써 벚꽃이 지고 복사꽃 배꽃 등이 핀 북한강에 마음이 설랬다. 쭈빗거리며 여대 기숙사를 구경하고 도심에 나와 막국수점심을 먹고 공지천에서 보트를 젓고 에티오피아카페에서 쓴 커피 한잔하고 서둘러 막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심포지엄이 끝나고 숙소인 도청 뒤 세종호텔에 와서 샤워를 하고는 삼삼오오 2차 ‘술집투쟁’을 나갔다. 호텔에서 5분 걸으면 바로 중앙로인 명동의 닭갈비집이다.
우리에게는 대학시절 경춘선열차를 타고와 처음 먹어봤던 닭갈비. 중국 동포들에게겐 닭갈비가 낮 설다. 한국전쟁 뒤에 나타난 음식이니까.
50-60대에게는 청춘시절의 추억이 다 남아있다. 언젠가 다시 가봐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쉽지는 않다. 청량리- 춘천 경춘선 청춘열차에 70대가 많이 몰려 우리 60대도 열차 내에서는 젊다.
참석자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셔 돌아와 잤는데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가다 바로 옆방 문 옆에 ‘이곳은 대통령께서 머무르시던 객실입니다’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자세히 보니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사진이 걸려있었다. 내가 잔 방이 그때는 경호실장용 방이었을 게다.
지금은 도심에 큰 호텔들이 많지만 그때에는 강원도청을 방문하면 묵을만한 호텔이었던 것이다. 두 분 다 돌아가셔서 올해는 ‘봄내’인 춘천에서 역사적인 잠을 잔 셈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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