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후폭풍 이념 성향 다른 정당들 동시에 문제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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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국빈방한 서훈 행사 [출처/대통령실홈페이지] |
이재명 정부가 밝힌 협상 결과를 두고 여야 모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과 진보당은 “국익을 내준 협상”이라고 한목소리를 냈고, 개혁신당의 이준석 대표조차 “협상 구조의 점검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념 성향이 다른 정당들이 동시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드물다. 그만큼 이번 협상이 안고 있는 불투명성과 불균형이 크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번 협상은 사실상 미·일 협상 구조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라며 “한국은 일본보다 경제 규모도, 외환 여력도 작은데 동일한 틀을 적용한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특히 정부가 지난 7월 “현금 투자 5% 미만”이라며 국민을 안심시킨 뒤, 실제로는 2,000억 달러 규모의 현금 투자에 합의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은 더 커졌다. 외환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통화스와프도 없는 대규모 달러 투자 약속은 위험한 결정이라는 지적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 협상에 정식 합의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교 관례상 국가 간 경제협상은 조항별 합의문이나 부속 문건이 공식적으로 공개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번 한·미 협상은 공동 기자회견과 구두 발표로만 정리된 채, 서면 합의문이나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가 마련되지 않았다. 정부는 “협상 요약문은 내부 참고용으로만 존재한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사실상 국익을 담보할 법적 장치가 없는 임시 합의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는 “연 200억 달러 분할 납부는 강도적 약탈과 다를 바 없다”며 “투자위원회 위원장을 미국 상무장관이 맡는 구조는 주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APEC을 앞두고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협상을 서둘렀다”며 “이건 협상이 아니라 강요된 약속”이라고 했다. 협상 문서조차 없는 상태에서 대규모 투자가 약속된 것은, 사실상 ‘국익 없는 쇼 외교’라는 지적이 나온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도 “25%였던 자동차·부품 관세를 15%로 낮춘 건 현실적으로 최선의 결과지만, 한·미 FTA의 틀이 약화된 점은 우려스럽다”고 평가했다. 그는 “합의문 없이 진행된 협상은 정치적 상징만 남긴 빈 껍데기”라며, “이런 방식이 반복되면 외교 신뢰가 흔들린다”고 경고했다.
정치권의 경고는 거세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번 협상은 헌법상 국회의 비준 동의 대상”이라며 정부가 국회를 우회한 외교를 시도했다고 비판했다. 진보당 역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합의는 국회 검증이 필요하다”며 협상 전 과정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투자 한도는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며 방어에 나섰다.
여기에 외교적 상징의 불균형도 뒷맛을 남겼다. 신라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받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미국 신인선수 크루스의 친필 사인이 담긴 야구 방망이를 선물했다. 대통령실은 “한·미 문화 유대를 상징한다”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격이 맞지 않는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상징적 교환조차 동맹의 불균형을 드러낸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이번 협상은 형식 없는 합의, 근거 없는 약속, 검증 없는 외교라는 세 가지 문제를 남겼다. 외교는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아니다. 법적 장치 없이 구두로 진행된 협상은 향후 정권이 바뀌거나 경제 여건이 악화될 경우 언제든 불이행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무엇보다 동맹의 이름 아래 ‘대등성’을 잃은 외교는 곧 ‘경제적 종속’의 다른 표현이다.
이재명 정부가 진정 ‘실용 외교’를 내세우려면, 먼저 합의의 절차와 내용이 투명해야 한다. 외교는 숫자가 아니라 신뢰로 평가된다. 이번 한·미 협상은 그 신뢰를 갉아먹었다. 경주의 불빛은 꺼졌지만, 국민은 여전히 묻고 있다.
“이것이 과연 대등한 동맹의 결과인가.”
그 물음에 정부는 성과가 아닌 진실과 책임으로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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