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자진사퇴' 11년전 황우석사태에 발목잡혀…과학·기술계 '환영' [사퇴의 글-전문포함]

미선택 / 김용환 / 2017-08-11 20:27:48
본인은 끝까지 '부당' 항변…과기혁신본부 안착 다소 늦춰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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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기영 신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11년전 황우석 사태에 발목이 잡혀 임명 발표 나흘만에 하차했다.[제공/연합뉴스]

[데일리매거진=김용환 기자] '실세 본부장'이 될 것으로 전망되던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11년전 황우석 사태에 발목이 잡혀 임명 발표 나흘만에 하차했다.


세계 과학 역사상 최악의 연구부정행위 사건 중 하나인 '황우석 사태'에 깊이 연루된 박 본부장이 연간 20조원에 가까운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관리하는 자리를 맡아서는 안 된다는 과학기술계의 반발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이런 반발은 연구의 진실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과학기술계의 속성상 당연한 것이었으나, 이 점을 감안하지 않고 청와대가 안이한 판단에 입각해 인사를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다만 청와대가 비교적 빠르게 여론을 수렴하고 당사자가 결단을 내린 점에 대해서는 과학기술계에서도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박 본부장 낙마의 근원이 된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은 2005년 말과 2006년 초에 걸쳐 전모가 드러났다.


연구비 확보·사용 과정의 비위와 실험용 난자 확보 과정의 심각한 생명윤리 위반도 밝혀졌다.


황 전 교수의 '과학 사기'가 드러나기 전에 박 본부장은 2004년 1월부터 2006년 1월까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정보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재직하면서 정부가 황 교수에게 파격적·전폭적 지원을 하는 데 중심 역할을 맡았다.


의혹 폭로 초기인 2005년 11월 말에는 황 전 교수 연구팀의 생명윤리 위반 의혹을 반박하는 보건복지부의 발표 과정에도 관여했다.


그는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임명된 후 황 전 교수가 2004년 낸 사이언스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으나, 진상조사 결과 연구에 기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명백히 연구부정행위에 해당하는 사례였으나, 박 본부장은 보좌관직에서 물러났을 뿐 순천대로부터 징계를 받지 않고 교수로 복직했다. 또 1년도 되지 않은 2006년 12월에는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컴백'도 했다.


이는 당시 공저자였던 서울대·한양대 교수들 전원이 학교 당국으로부터 연구부정행위나 연구비 관리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중징계와 권고사직 등 제재를 받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박 본부장은 또 2001∼2004년 황 전 교수로부터 전공과 무관한 연구과제 2개를 위탁받으면서 정부지원금 2억5천만 원을 받았으며, 2006년 초 검찰 수사에서는 최종 연구개발보고서를 제때 제출하지 않고 일부 연구비를 절차상 부적절하게 집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다만 사법처리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이런 행적 때문에 박 본부장은 7일 임명 발표 직후부터 과학기술인단체·시민단체들과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등 야당으로부터 거센 사퇴 압력을 받아 왔다.


박 본부장은 황우석 사태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다가, 본부장에 임명된 지 사흘만인 10일에야 "청와대에서 과학기술을 총괄한 사람으로서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하면서 이 자리를 빌려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11년만에 사과했으나, 과학기술계의 냉엄한 판단을 피할 수는 없었다.


박 본부장 사퇴에 대해 과학기술계는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박 본부장 임명 후 '한국 과학기술의 부고(訃告)를 띄운다'는 성명을 냈던 민주노총 공공연구노조는 "문재인 정부가 연구 현장과 과학기술계, 시민사회의 의견을 따라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을 환영한다"라며 "우리는 여러 단체들과 함께 과학공동체를 바로 세우고 과학기술체제를 개혁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임명 반대 서명을 벌인 과학기술인단체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의 윤태웅 대표(고려대 교수)는 "실수를 인정하고 교정하는 과정을 통해 정부도 실력을 쌓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서울대 교수 서명운동을 벌여 온 이준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개인적으로 안타깝지만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평가하며 "과학에 이념이 있는게 아닌데 전문성, 상식이 통하는 분으로 모시면 좋지 않을까 싶다. 과기계 전문가가 별로 없어보이는데 인재풀을 좀 넓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의 낙마로, 과기혁신본부를 명실상부한 과학기술 정책 집행의 컨트롤타워로 삼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 실현은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조직법 등 관련 법령 개정으로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차관급 본부장을 둔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설치하는 것까지는 됐으나, 국가 R&D사업에 대한 예산 심의, 조정 권한과 함께 연구 성과를 평가하는 역할까지 부여한다는 구상은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국가 R&D 사업 예산 권한은 현재 기획재정부의 업무로 되어 있으며, 이를 과기혁신본부가 맡으려면 과학기술기본법 등 추가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


과기계와 관가에서는 기재부가 예비타당성 조사 등 연구개발 분야 예산 권한을 과기혁신본부에 쉽게 넘겨주지는 않으리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추후 정부내 논의과정에서 지리한 공방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다음은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의 사퇴의글


[사퇴의 글]


박 기 영


이글을 쓰면서 제가 제목에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사퇴한다” 라는 제목을 붙이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지명 받은 후 4일 동안 본부장이라는 직책명을 제 이름 앞에 감히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저를 본부장으로 지명해주시고 대변인 브리핑으로 또 다시 신뢰를 보여주신 대통령께 감사 드립니다.
지명 후 곧이어 MBC PD수첩의 전 진행팀 등을 비롯한 몇 곳에서 문제제기가 시작되면서 불안감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11년전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사건은 저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였습니다.
청와대에서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한 책임자로서 엄청난 문제가 생겼는데 왜 사과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책임자로서 저도 수백번 무릎꿇고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과학기술이라는 배의 항해를 맡았는데 배를 송두리째 물에 빠뜨린 죄인이라는 생각에 국민 모두에게 죄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묵묵히 모든 매를 다 맞기로 했습니다. 또한 그 당시 어떠한 사과도 귀기울여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연구자로서 과학계의 자체적인 검증체계인 “연구과제 선정과 논문 게재”라는 결정된 내용을 존중합니다. 특히 저는 무엇보다 연구자의 실험결과를 믿습니다. 약간 의아한 부분이 없지도 않았고 직접 질문도 해보았지만 황우석 박사의 논문과 실험결과를 믿었습니다.


지금도 정부의 연구방향 설정에서 국민의 여론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1년전 황우석 박사는 어린이 책으로 전기가 나올 정도로 엄청난 스타과학자였습니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가 잘 진행되어야 하는데 정부지원 부족으로 컨테이너 건물에서 연구하고 있다는 것부터 정부지원 부족을 질책하는 기사가 일간지 1면 기사로도 실렸습니다. 각계에서 경쟁적으로 황박사 연구를 지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줄기세포 사업단도 만들어 졌습니다. 생명과학계에서 황우석 박사의 연구지원에 불만도 있었지만 결국 여러 정부연구과제와 시설 등의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아 나갔습니다.


황박사의 연구가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은 것은 제가 보좌관으로 일하기 훨씬 전인 10여년 전부터였습니다. 제가 황박사를 만난 것은 1999년경 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주홍글씨의 씨앗이 잉태되었습니다. 저는 과학기술 운동을 하는 보잘 것 없는 지방대 교수이었고, 황박사는 스타 과학자였습니다. 제가 유전자변형작물에 대한 심층 연구보고서를 쓰고 난 후 이 내용의 전문성 때문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황우석 박사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저는 포괄적인 책임을 통감했습니다. 곧장 사표를 제출하였지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엄청난 내용의 충격 때문에 거의 2개월 이후 사표가 수리되었습니다. 청와대 참모로서 정부의 과기정책 담당자로서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습니다. 가장 책임을 크게 지는 방법이고 가장 크게 사과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이 제 임기 중에 일어났다고 해서 제가 황우석 논문 사기 사건의 주동자나 혹은 적극적 가담자로 표현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황우석 교수의 서울대 연구실에 대통령을 모시고 간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2003년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저는 보좌관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니라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실험실 당사자조차도 제가 모시고 간 것으로 쓰고 있습니다. 저에게 덧칠을 하기 위해 허위의 내용도 만들어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참았습니다.


제가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임명 받은 이후에는 한때 공동연구진이었던 이유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진을 격려하고 연구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했습니다. 저는 청와대에서 이 업무를 담당했지만 그 외에도 여러 부서에서 황우석 연구의 관리 업무를 진행하였습니다.


저는 연구비 수주에 늘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학 연구자로서 스타과학자로 인해 연구 현장의 연구비 몫이 줄어들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최고과학자 연구비 재원으로 다른 재원을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내어 해당 부처로 이관해주기도 했습니다.


외국의 저명한 줄기세포 연구자들도 모두 감탄할 정도의 연구가 조작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황우석 교수 연구 조작의 모든 책임이 저에게 쏟아지는 것은 저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일입니다.


혁신본부장으로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혁신체계를 만들어 연구현장과 기업현장에서 혁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새로운 산업 영역이 개척되고 확대되어 고용을 통해 인간이 더욱 인간답게, 나라가 더욱 나라답게 변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저의 열정을 바쳐보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꿈이 있었습니다. 과학자가 정부에 들어갔다가 나와도 정치교수가 되지 않는 꿈입니다. 다시 연구 현장에서 전공을 열심히 공부하는 그런 정책과 과학 연구를 넘나들 수 있는 정책광이 되고 싶었습니다. 학교 현장으로 돌아가서는 1차적으로 전공 연구에 몰두하였고, 시간을 할애하여 과학기술정책을 연구했습니다.


대학 1학년때부터 과학기술정책에 관심을 가졌고 사회의 과학기술운동에 거의 40년간 몸담았습니다. 이번 계기로 제가 노력했던 꿈과 연구 목표 그리고 삶에서 중요시 여겼던 진정성과 인격마저도 송두리째 매도되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나락으로 추락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까지 임기 중 일어난 사고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고 삶의 가치조차 영원히 빼앗기는 사람은 정부 관료 중 아마도 저에게 씌워지는 굴레가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가혹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에게 큰 실망과 지속적인 논란을 안겨드려 다시 한번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어렵게 만들어진 과학기술혁신본부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서 과학기술인의 열망을 실현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저의 사퇴가 과학기술계의 화합과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별첨】연구비 수주 및 공동저자 관련


생명과학 연구에서는 준수해야 할 민감한 과정들이 있습니다. 유전자 변형이나 줄기세포 연구에서 그런 절차가 많은데 국가가 잘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황우석 교수 연구를 대상으로 사회적 수용성과 절차 및 국가관리에 관련된 연구를 하고 싶어서 인문사회과학 교수들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연구진을 꾸려서 연구과제의 책임을 맡았습니다.


뭉뚱그려 2억 5천만원을 황우석 박사 개인에게서 받았다는 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우리 연구진은 위탁과제와 세부과제를 구성하여 황우석 교수와 함께 연구과제 신청단계에서부터 참여하였습니다.


위탁과제로는 2001년 12월부터 3년간 연간 5천만원씩 서울대로부터 연구비를 받았습니다. 과제명은 “형질전환을 통한 광우병 내성소 개발의 사회적 영향평가”이었고 연구진은 책임급 3명 포함 총 5명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이 연구의 3차년도는 2004년 11월 종료였지만 저는 단지 2개월만 연구를 수행한 후 2004년 1월 보좌관 임명으로 연구책임자를 반납했습니다.


세부과제 연구는 황우석 교수가 총괄책임자인 연구과제에서 제8세부과제였던 “바이오장기의 윤리적 고찰 및 산업적 발전방안”를 구성하여 연구과제 제안서 작성과정부터 참여하여 과학기술부로부터 연구과제를 수주하여 과학재단으로부터 직접 연구비를 지원받았습니다. 1년 연구비는 1억원이었으며 제가 세부과제책임자로서 3개 과제를 구성하여 책임급 4명, 선임급 3명 기타 4명의 총 11명의 연구자가 참여하여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습니다. 2003년 6월 23일부터 1년간이었으므로 저는 7개월 연구진행 후 연구책임자를 역시 반납하였습니다.


이 세부연구과제에는 “바이오장기 개발 기술의 사회적 영향평가”, “바이오장기 개발 및 실용화의 윤리적, 법적 문제”, “바이오 장기의 개술개발 및 산업화 전략 수립과 생명산업 기술 혁신 정책 연구” 로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도중하차 하였지만 이 과제의 연구팀에서 도출된 줄기세포 연구 가이드라인은 국제적으로 활용되는 줄기세포 연구 가이드라인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러한 연유가 작용하여 공동연구진의 세부과제 연구책임자를 공동저자로 넣기로 했다는 것을 전화로 듣고 이에 동의함으로써 2004년 황우석 박사의 사이언스지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시기에도 저는 대학 교수 신분이었습니다. 논문의 경우 공동저자의 역할 중 연구기획과 실험 디자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있기에 이 사례에 해당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실험을 수행하지 않았기에 서울대 조사위원회에서 “기여 없음”으로 결정이 났었고 좀 서운한 감은 있었지만 수용하였습니다.


공동연구책임자 몇 명이 모여 인간의 줄기세포로 연구를 수행하겠다는 연구계획에 대해 이야기 나눴던 2000년 경 장면이 15년도 넘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논문 조작사건이 벌어진 이후 진행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저를 비롯한 저희 실험실 학생구성원과 연구진 모두가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으나 연구진행과 연구비 사용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번 언론보도에서는 과거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각종 의혹들이 진실 규명 없이 언론에 도배되었습니다. 10여년이 지나고 나니까 그 모든 의혹이 진실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들을 누구나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인간 사회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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