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고온 가능성은 고려 않고 연초 계획만 고수

사회일반 / 배정전 / 2011-09-18 15: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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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매거진=배정전 기자] # 전력 수요 오판… 발전기 일제 정비

이번 정전사태는 늦더위 때문에 전력 소비는 늘었지만 발전소 가동을 한꺼번에 중단하면서 전력 생산에 차질을 빚은 게 주된 원인이다. 기상청의 폭염 예보에도 불구하고 당국이 정비·점검을 위해 발전소 가동을 잇따라 중단한 이유는 뭘까.

한국전력거래소 관계자는 16일 “최근엔 여름 성수기보다 겨울 성수기에 전력소비량이 높을 때도 있어 발전기 점검이 중요해졌다”며 “봄과 가을철이 짧아지면서 정비를 서둘러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하계비상전력 수급기간이라 하더라도 고장 가능성이 높은 발전기를 중심으로 전체 전력 공급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순차적으로 점검에 돌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15일 현재 정비·점검을 위해 가동이 중단된 발전기는 전체 329기 가운데 모두 25기다.

중단된 발전소는 834만㎾의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이 중 이달 들어 가동이 중단된 곳만 20기에 달한다.

전력당국은 6월27일~9월2일을 하계비상전력 수급기간으로 잡고 있다. 최근 9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되자 당국은 비상 수급기간을 이달 9일까지 연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하계비상전력 수급기간을 1주일 연장해 놓고도 발전소 가동을 계속 중단했다. 전력 수요가 늘어날 것을 알고도 9월9일 이후에만 4기의 발전기를 추가로 세웠다.

전력거래소는 보통 각 발전소의 정비계획을 받아 10월쯤 내년 정비계획을 짠다. 올여름 늦더위가 예보된 상황에서도 정비계획을 강행한 것은 문제다.

덩치가 큰 원자력 발전소 3기가 가동을 멈춰선 것도 전력수급 악화를 불렀다. 8월29일부터 9월14일까지 울진원자력 2·4호기와 영광 2호기의 가동이 중단됐다. 이 때문에 차질을 빚은 전력 생산량만 300만㎾에 달한다.

전력 생산 비중이 큰 원자력 발전소의 경우 18개월 주기로 정기 점검을 하도록 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규모 정전사태를 계기로 원전의 경우 하·동계 전력 성수기를 피해 정비시기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 단전 안했다면 ‘블랙아웃’ 일어났을까

한국전력거래소가 전력 공급을 중단한 15일 오후 3시의 예비전력은 343만㎾였다. 그 전에 순간적으로 예비전력이 149만㎾로 떨어졌던 적도 있다고 한다. 매뉴얼에는 예비전력이 100만㎾ 밑으로 떨어져야 단전을 하도록 돼 있다. 전력거래소는 이를 무시하고 조기 단전을 감행한 것이다. 그대로 놔둘 경우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시설과 설비가 동시에 정전되는 ‘블랙아웃’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전력거래소가 단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블랙아웃이 현실로 나타났을까.

정부는 계속되는 늦더위에 맞춰 양수발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양수발전은 물을 퍼올려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350만㎾가량의 전력을 비축할 계획이었다. 수요가 급변할 때 기민하게 가동할 수 있어 효과적이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전기 사용량은 급격하게 늘었다. 오후 1시를 넘어서자 양수발전용 물이 바닥날 지경이 됐고 전력 수요가 가장 많은 오후 3시가 되면서 양수발전량이 고갈됐다. 더 이상 전력을 비축할 방법이 사라지고 예비전력이 위험수위에 달하자 순환 단전을 지시한 것이다.

한국전력공사 관계자는 “전력거래소 실무자들의 판단을 현재로서는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파른 전력 소비 추세로 미뤄 단전을 하지 않으면 블랙아웃으로 치달을 위험이 컸다는 얘기다. 김도균 지식경제부 전력산업과장은 “15일 오후 3시 이후 예비전력이 줄어드는 속도가 워낙 빨랐다”며 “예비전력이 100만㎾ 아래로 떨어진 다음에 단전 조치를 실시했다면 해당 조치를 취하는 데 시간이 걸려 자칫 블랙아웃이 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블랙아웃 상태에 빠지면 회복에 오래 걸린다는 점도 조기 단전 조치를 취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화력발전소는 초기 전력만 공급되면 3~4시간 안에 재가동할 수 있다. 그러나 전력 공급량이 많은 원자력발전소가 문제다. 자동 냉각에 들어간 핵연료를 다시 태우는 데 최소한 일주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전국적인 정전 상태가 지속돼 국민 불편이 가중될 수 있다.

# 사이버 테러 논란… 한전 “해킹 없었다”

지난 15일 일어난 초유의 전력 공급 중단이 한전 컴퓨터망에 대한 해킹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한국전력은 “해킹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보안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큐브피아 권석철 사장은 16일 “한전 산하 전력연구원 고창시험센터의 내부 서버가 악성코드에 감염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외부 해킹이 원인일 수 있다”고 밝혔다.

권 사장은 “지난 3일 중국의 한 해킹 사이트에서 고창전력시험센터의 서버가 악성코드에 감염된 사실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찾아내 이를 국가정보원에 신고했다”며 “이후 9일 국정원에서 ‘별다른 문제 발견 못했다. 조치했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석연찮다”고 말했다.

그는 “해커가 고창전력시험센터 서버를 통해 한전 내부로 침투, 실제 전력 사용량이 많지 않은데도 전산상으로는 과부하에 걸린 것처럼 설정해 전기 공급을 중단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한전이 전력공급을 중단하기 전 트위터에서 이미 정전 얘기가 오간 점, 한 개 구(區) 내에서 일부 지역은 정전되고 다른 지역은 전력이 공급된 점 등도 해킹 공격의 근거로 들었다. 권 사장은 “해킹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국내 주요 시설의 원격감시제어망에 대한 전수검사와 대비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전 측은 “해킹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전 관계자는 “고창센터 서버는 한전 산하 서버에 불과하고 전력통제는 한전 서버와는 전혀 다른 중앙급전소 서버에서 별도로 관리 중”이라며 “가상으로 전력 사용량을 많게 해 전기공급을 중단시켰다는 것도 상상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단전 격차에 대해서도 “특정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변전소를 차단하면 같은 구 내라도 얼마든지 지역별 단전이 가능하다”며 “해킹이 아니라 본래 중앙에서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한전 관계자는 “전력을 통제하는 원격감시제어망은 국가 주요 시설이기 때문에 평소 철저한 보안대책을 세워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정전 사건 일지◆

14:00 전력수요 급증
14:30 전력거래소 지경부에 전력수급 이상 보고. 지경부 무시
15:00 예비전력 149만kW 최소치 기록
15:11 예비전력량 300만kW 수준으로 순환 단전 실시
16:35 예비전력량 400만kW 회복
18:00 최중경 장관 청와대 만찬 참석
19:48 최중경 장관 대국민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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