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초유 사법부 정부 정책에 제동‥ISD 등 5대 쟁점 논박

법원 / 배정전 / 2011-12-02 10: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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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매거진=배정전 기자] 우리 사법부가 사상 처음으로 정부 정책을 조목조목 바판하고 나섰다. 특히 김하늘(43)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사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위한 법원행정처 내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제안하며 "한미 FTA는 불평등 조약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김 부장은 1일 법원 내부게시판인 '코트넷'을 통해 "나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부탁드린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처음에는) 한미 FTA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적 논란이 거듭되면서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미 FTA 내용 파악에 나섰다고 밝혔다.

그 결과 김 부장은 한미 FTA에 반대입장으로 선회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 FTA는 여러 독소조항을 품고 있고, 특히 사법주권의 명백한 침해"라고 주장했다.

우선 김 부장은 "한미 FTA로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법률상 장벽은 제거되는데, 미국에 있는 것은 그대로 존속한다"고 설명했다. 성문헌법인 우리나라에서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 '신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비준안이 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발휘하지만, 불문법인 미국의 경우 이행법안을 주정부가 "주 법률이 협정에 불합치하다는 이유로, 효력이 없다는 선언을 할 수 없다"고 명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번재로 김 부장은 "네거티브 방식에 의한 개방"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한미 FTA는 개방을 유예·제한하는 분야만 협정에 적시하고 나머지는 완전 개방 방식인데, 현재로서는 예측하지 못하는 새로운 서비스 시장이 열릴 때 우리나라가 이를 보호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부장은 "유럽연합과 맺은 FTA처럼 선진국인 미국과는 '포지티브' 방식의 개방을 취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번째는 '역진 방지 조항'(한번 개방한 수준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거론했다. 김 부장은 한국영화 스크린쿼터 제도를 예로 들며 "한번 146일에서 73일로 축소되면, 우리 영화산업에 피해가 발생해도 다시 100일로 늘릴 수 없다"며 "역진 방지 조항은 우리 경제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는 시장보호정책을 취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족쇄"라고 비판했다.

네 번째로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이다. 김 부장은 "우리 정부의 세금, 불공정거래 시정조치, 중소기업 육성정책 등으로 인해 외국 투자자에게 간접적으로라도 손실을 안기면 이를 보상해줘야 할 수 있다"며 "이런 간접 피해액이나 기대이익은 예측하기도 어렵다"고 우려했다. 천문학적 손해배상 위험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끝으로 최근 논란의 핵심인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 조항을 언급했다. 김 부장은 "본질적으로 우리 사법주권을 빼앗는 조항"이라며 "왜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분쟁에 대해 국내 법원이 아닌 제3의 기관에 권리 구제를 맡겨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왜 법원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법권을 포기해야 하나"라고도 했다.

김 부장의 글에 대한 파장은 컸다. 일부 판사들은 "이런 식으로 행정부 영역을 침범하면 사법부 독립을 훼손할 수 있다"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한미 FTA가 법원에 미칠 영향도 있으니 논의를 해 보자는 취지인데 확대해석은 금물" "법률전문가들이 올바른 대응책을 만들자는 것"이라며 동조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김 부장의 글은 게시 하루만에 동조하는 판사가 100명이 넘는 등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최근 한미FTA 비준동의안 강행 처리를 비판했던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김 부장 판사의 의견에 대해 "사법권력의 당사자로서 문제의식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 한미 FTA 관련 판사들의 발언 ※

11월 22일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 페이스북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 관료들이 서민과 나라를 팔아먹은 2011년11월22일. 난 이날을 잊지 않겠다"

11월 25일 대법원

"최은배 부장판사 글 관련,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를 통해 논의하겠다"

11월 27일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 페이스북

"개그맨분들이 너무 부럽다. 페북도 판사는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 계속 할 거야"

11월 28일 변민선 서울북부지법 판사, 법원 내부통신망

"(최은배 부장판사의 윤리위 회부 건은) 재판 공정성을 단죄하고 의사 표현을 위축시키려는 시도다"

11월 29일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11월 30일 서기호 서울북부지법 판사, 법원 내부통신망

"페이스북의 가이드라인 제정을 대법원이 주도적으로 하는 것에 반대한다"

12월 1일 양승태 대법원장, 경력 법관 임용식

"양심은 보편적인 규범의식에 기초한 법관으로서의 직업적이고 객관적인 것을 의미한다. 독특한 신념에 터 잡은 개인적인 소신을 법관의 양심으로 오인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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