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 유력 후보 부상으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보수 선명성 강화'로 승부수를 던졌다.
박 전 대표는 최근 '버핏세'(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에도 제동을 건 데 이어, 지난 대선 후 4년여 만에 최근 보수성향으로 분류되는 5개 종합편성채널(종편) 및 보도전문채널과 첫 인터뷰를 가졌다.
수도권 등 당대 대다수의 의원들이 "총선을 앞두고 조금 더 중도로 옮겨 젊은층과 수도권 유권자를 흡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행보다.
박 전 대표는 최근 보수성향 종편인 TV조선(조선일보)·jTBC(중앙일보)·채널A(동아일보)·MBN, 보도전문채널 '뉴스Y'(연합뉴스)의 1일 일제 개국에 맞춰 각사와 모두 별도의 인터뷰를 가졌다.
그의 이 같은 언론 인터뷰는 4년5개월만에 처음이다. 그는 지난 대선이 끝난 후 한 차례 미국 외교전문지에 기고를 했을 뿐 국내의 어떤 언론과도 개별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종편들은 박 전 대표를 사실상 개국 간판 프로그램으로 삼았고, 박 전 대표 역시 첫 언론 인터뷰의 대상으로 종편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진보진영 시민사회와 정치권, 언론들이 '전국언론노조 총파업', '연대 백지광고'등을 하며 5개 방송을 이른바 '조중동매연'이라고 이름짓고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라 박 전 대표의 선택은 '의외'라는 평가다.
앞서 박 전 대표는 홍준표 대표와 당내 쇄신파들이 추진해 온 '버핏세' 추진 움직임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 인기영합(포퓰리즘)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친박계 최경환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는 '세제 논란이 너무 정치적으로 흐르면 누더기 세제가 돼 버린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20~40대, 수도권층을 흡수해야 하는 상황인데 중도층을 오히려 자극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부정적 반응을 나타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최근 언론 여론조사에서의 '대권 2위 고착화 현상'과, 이로 인한 보수의 분열 움직임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선명 보수'의 기치를 내건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최근 지지율 답보와 당내 분열 양상, 부산일보 발행중단 사태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한나라당의 구심력이 약해지면서 당 내부에서는 "당을 해체하고 재창당해야 한다", "안철수에 맞설 대권주자를 발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분열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심지어 소수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안철수 원장을 중심으로 한 중도정당이 탄생할 경우 참여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진영이 분열할 경우 박 전 대표의 대권 로드는 '험로'가 된다.
당 외부의 악재도 심각하다.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었던 정수장학회가 소유한 부산일보의 '발행중단 사태'는 점점 파장이 커지고 있다.
부산일보 경영진은 지난달 말 편집권 독립과 정수장학회 사회환원을 주장하던 이호진 노조위원장을 면직하고, 관련 기사를 막기 위해 윤전기를 세웠다. 이 때문에 부산일보는 11월30일자 신문을 내지 못했다.
부산일보 노조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박 전 대표의 간접적 영향을 받는 정수장학회와 부산일보가 분리되어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박 전 대표는 당 대표 시절이던 2005년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박정희 정권 당시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 소유주였던 고 김지태씨가 장학회를 헌납한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이겠다고 하자 "정치탄압"이라고 반발하며 10년 가량 유지해 온 이사장직을 내놨다.
당시 그는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요구에 "이미 공익재단으로 사회에 환원된 것인데 이를 다시 환원하라는 것은 억지"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후임으로는 측근인 최필립 전 청와대 의전·공보비서관이 선임됐다. 부산일보 노조는 부산일보가 여전히 박 전 대표의 영향권 아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진보진영은 부산일보 사태를 두고 "박 전 대표가 집권하기도 전에 언론장악에 나섰다"고 비판하고 있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2일 "박근혜 전 대표 측의 행태는 독재자의 그것을 닮아 있다"며 "윤전기가 서서 하룻동안 신문이 나오지 못한 것을 보니 기가 막히다"고 지적했다.
'정치의 계절'을 앞두고 박 전 대표의 향후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데일리매거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