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정전대란으로 나라 전체가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사태의 후유증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력공급능력이 충분한 상황에서 기상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섣부른 판단뿐만 아니라 정전사태 발생 과정에서 정부의 대처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지경부, 한전,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15일 전국적인 정전사고는 이상고온으로 인한 전력 수요 급증과 발전소 정비로 인한 공급 능력 감소가 겹치면서 순간적인 과부하 상태에서 발생했다.
수요부문에서는 대구지역 등 일부 지역에서 기상관측이래 최고 기온을 기록하면서 전력수요가 당초 예측치보다 약 326만㎾를 초과했고, 공급측면에서는 추석연휴가 끝난 뒤 실시한 하계 전력수급 비상기간 중 정비를 보류했던 약 25기(890만㎾규모)의 발전소 정비를 실시해 전력공급이 평소보다 부족한 상황이었다.
결국 이날 오후부터 전력공급은 급증하는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해 공급예비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정부는 매뉴얼에 따라 전압조정과 자율절전 등을 동원했지만, 오후 3시께 순간 예비력이 148.9만㎾까지 강하하면서 비상조치를 실시했다.
지경부 관계자는 "공급능력 중 약 392만㎾에 해당하는 양수발전 부분이 발전용수량 부족으로 3시부터 정지됐다"며 "순간 예비력이 3시 현재 148.9만㎾까지 떨어짐에 따라 비상조치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한국전력거래소는 기존 비상매뉴얼에 따라 오후 3시11분부터 정전조치를 실시했고, 비상 정전조치 일환으로 전국 지역 905개 선로(약 212만가구)에 대한 순차적인 정전을 실시했다.
문제는 이같은 비상조치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대응방식이 '최선'이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
일반적으로 예비전력량이 감소할 경우 매뉴얼에는 관심(예비전력 400만㎾ 이하), 주의(예비전력 300만㎾ 이하), 경계(예비전력 200만㎾ 이하), 심각(예비전력 100만㎾ 이하) 등 4단계별로 전력수급을 조절토록 돼있다.
정부는 순환정전이 불가피한 선택인 것으로 강조하지만 단전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전력거래소가 전력수급을 총괄하는 주무부처 지경부와 사전에 충분한 논의없이 일방적인 판단하에 결정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예비전력이 100만㎾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단계의 비상조치를 강행한 것은 과잉대응이라는 지적마저 일고 있다.
정부측은 선조치 후보고가 융통성있는 대응이라고 항변하지만 지경부나 한전 역시 하계 전력 비상수급기간이 해제된 이유로 전력수급 동향 모니터링에 소홀해 별도의 확인절차나 검토없이 전력거래소의 판단에만 의존해 단전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정부가 순환정전을 결정한 이후에도 국민들에게 비상조치를 실시한 배경이나 대처법 등 자세한 경위를 알리지 않은 점도 명백한 과실로 지적된다.
정부가 위급한 전력수급 상황과 관련해 충분한 설명을 통해 국민들을 이해시키고 납득시키는 노력이 있었다면 15일과 같은 정전대란으로 인한 국민들의 혼란은 가중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매뉴얼상에는 일반주택은 사전 예고없이 전력을 차단할 수 있지만 고층 아파트나 상업용 또는 업무용 건물은 정전 실시 1시간 전 통지해야한다는 점을 비춰볼 때 정부가 매뉴얼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정전사고에 따른 여파를 우려해 내부에서 쉬쉬한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15일 순환정전 사실은 교통신호등이나 엘리베이터 등의 작동이 멈추면서 불편을 겪은 사람들이 트위터나 메신저 등을 통해 급속히 퍼졌고, 언론사 등의 사실확인을 요구하는 문의가 빗발치자 정부는 부랴부랴 공식 해명자료를 내기에 급급했다.
◇ 최중경 지경장관 정전사태에도 자리 비워…책임론 대두
이런 상황에서 주무부처 수장인 최중경 지경부 장관의 행보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관가 안팎에서는 최 장관의 '결단'을 요구하면서 사퇴론이 거론되고 있다.
최 장관은 정전사고에 따른 비상조치와 관련해 관계기관과의 충분한 협의나 보고를 통해 최종적으로 정전조치 승인을 내려야 하지만 정전대란이 발생할 저녁에도 청와대가 주관하는 국민만찬을 이유로 자리를 비운 사실이 확인됐다. 최 장관은 논란이 일자 뒤늦게 해명을 통해 사과했지만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일단 정부는 정전재발 방지대책과 전력 수요관리에 중점을 두고 보완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정전사고 다음날인 16일에는 양수발전의 용량을 늘려 392만㎾를 추가로 확보한데 이어 하계 비상전력수급기간 중 실시했던 약정절전 조치를 긴급 시행해 총 40개 업체의 수요 절감을 이끌어내 약 150만㎾ 규모의 전력공급을 추가로 확보할 계획이다.
또한 전력거래소 주관으로 수요입찰시장을 운영해 60만㎾를 추가로 확보하고, 정비중인 삼천포 2호기의 정비를 완료해 가동을 개시함에 따라 56만㎾를 확보했다. 이로써 총 658만㎾ 용량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긴급부하조정을 위한 비상조치 매뉴얼인 '비상시 수급조절 운영계획'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발전소 계획정비도 전력수요 전망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발전소 정비계획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기로 했다. 특히 매년 하절기와 동절기 전력 피크기를 제외한 기간 중 정비기간이 균등하게 배분되도록 할 방침이다.
이밖에 행안부, 기재부, 교과부 등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유관기관의 긴급 전력 수요관리 협조를 요청하고, 대용량 전력수요기업에 대해선 냉방온도 제한을 유도할 계획이다. 보상규정을 현실화하는 차원에서 보상범위나 규모 등을 확대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경부 관계자는 "정전 피해 최소화를 위해서 기존의 운영되는 비상조치 매뉴얼을 보다 합리적으로 재검토하고 수정을 추진 중"이라며 "사태의 원인을 면밀히 분석해 재발방지대책을 철저히 추진하겠다"고 했다.
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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