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대책 관련 당정협의에서 중소기업 기술탈취 문제와 관련, "범정부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언하고 있다. [제공/연합뉴스]
[데일리매거진=김영훈 기자] 정부가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출탈취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12일 중소기업 기술탈취 문제와 관련,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거래시에는 반드시 비밀유지 협약서를 교부하도록 해 이를 어기면 범죄 행위화하겠다"고 말했다.
홍종학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대책 관련 당정협의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비밀기술 자료를 요구하고 보유하는 원칙을 재정립할 것이다. 기존 관행처럼 여겨온 구두나 메일을 통해 기술 비밀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금지할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중소기업이 스스로 기술을 보호하도록 기술 임치제도를 활성화할 것"이라면서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기술자료 거래 내역을 공적 기관에 등록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해 추후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때 입증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검찰, 경찰, 공정위, 특허청 등 행정 부처가 보유한 조사와 수사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면서 "행정적 조치가 원활하고 신속히 이뤄지도록 하고 행정부의 시정권고 등 권한을 보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중기부와 관련 부처가 함께하는 기술탈취 근절 및 기술보호 위원회를 통해 행정 부처가 함께 앞장서겠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그는 대중소기업간 상생노력, 중소기업 기술탈취 예방과 사후 규제를 위한 법적·물적 지원 강화 등도 언급했다.
홍 장관은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대책은 갑을 관계의 시장구조를 혁파하고 공정경제를 바로 세우는 조치로 경제 회복과 성장을 도모하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모두발언에서 "강력한 제재가 정착돼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먼저"라면서 "공정위와 중기부 내 자율조정 분쟁해결 제도가 있으나 대기업의 수용은 극히 드물다. 조정안에 강제력이 부과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탈취에 대응하는 컨트롤타워의 구축도 서둘러야 하겠다"면서 "핵심 기술을 제대로 보호해서 중소기업이 지속 성장할 제도적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공정한 기술거래를 위한 인수·합병(M&A) 생태계를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중소기업 기술보호를 위한 제도와 인프라 보완, 범정부 협업체계 강화를 통한 신속한 구제, 중소기업 자체 보호역량 강화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책 발표로 앞으로 대기업이 중소 기업 간 기술자료 요구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어길 시 손해액의 최대 10배까지 물어줘야 한다.
기술을 탈취당한 피해 중소기업은 공정거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검찰에 고소ㆍ고발할 수도 있다.
김남근 참여연대 변호사는 "기존 전속고발 체제에서는 공정위에 강제 조사권이 없다 보니 가해 기업이 시간을 끌어 사건이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검찰이 조사에 나서게 되면 신속한 사건처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동안 일부 대기업들에서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들을 서로 존중할 거래당사자가 아닌 하청업체 또는 편취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특히 힘없는 중소기업들의 기술을 빼앗이 이용하는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대기업의 힘이 강한 곳은 이런점에 있어서 매우 취약할 수 밖에 없다.
대기업의 빼째기식 횡포ㆍ갑질
행정당국 제재ㆍ처벌 미미한 수준
최근 5년간 중소기업이 경험한 탈취사례가 528건, 피해금액만 해도 무려 3000억원이 넘는다. 알려진 기술탈취 유형으로는 재계약 시점에 제품 설계 도면을 요구 후 단가 인하 및 소급 적용을 요구하거나 품질 개선을 의뢰한 뒤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테스트하고 그 자료를 이용해 직접 생산 또는 위탁 생산하는 행위, 기술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는 행위 등이 있다.
그 예로 최근 A사는 2013년 3~10월 디지털 인쇄 방식을 이용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던 배터리 라벨 제조 하청업체에서 기술 자료를 23차례에 걸쳐 요구했다. 이후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제하고 넘겨받은 기술로 중국법인에서 직접 배터리 라벨을 만들어냈다가 2016년 공정위에서 과징금 1천600만원을 부과받은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당국의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제기됐고 해당 하청업체는 빼돌린 기술들로 인해 라벨 사업을 그만두게 됐다.
또 다른 사례로는 1997년부터 6년간 미생물 배양 기술인 VOC 저감기술을 개발한 하청업체 C는 지난 2003년 대기업 A의 요청으로 VOC 저감 기술을 설명한 이후 2004년 4월 대기업 A에 해당 기술을 활용한 '도장 악취 제거 미생물'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미생물 납품 직후인 2004년 8월, 하청업체 C는 VOC 저감 기술을 툭허출원했고 2년 후인 2006년 8월, 대기업 A는 C에 요청하여 '도정 악취 제고 미생물' 기술에 대한 공동 특허를 등록했다. 이러한 공동 특허 등록은 실제로는 대기업 A의 압박한 의한 결과였으며 A와 같은 단가를 맞춰줄 만한 타 기업이 없었으므로 울며 겨자먹기식이였다는 것이 하청업체 C의 설명이다.
'도장 악취 제거 미생물' 기술의 공동 특허 등록 이후 10여 년이 지난 2014년에는 대기업 A의 모 사원이 'VOC 저감기술과 유사한 기술'을 연구해서 석사논문 작성 및 석사논문 통과를 하는 성과를 이뤘다. 그리고 해당 성과를 바탕으로 모 사원이 석사를 받은 대학과 대기업 A의 'VOC 저감기술'의 공동출원이 이뤄졌다. 이 후 2015년에는 당연한 절차로 하청업체 C와 대기업 A간의 계약이 해지됐다. 대기업 A쪽에서 '도장 악취 제거 미생물' 기술을 시행하는데 필요한 상위 기술인 'VOC 저감기술'의 공동 특허출원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기업 A는 기술을 탈취한 혐의도 모자라 불공정거래행위 혐의도 받게 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술 자료를 강제로 받아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가 무척 어려운데다 하청업체들의 신고도 활발한 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기술탈취 관련 소송에서 중소기업은 단 한차례도 승소하지 못했으며, 민사사건 처리에는 대법원까지 통상 2~3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승소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이 따른다.
업계의 한 대표는 "기술분쟁조정위에 신고해도 피해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며 "게다가 익명성이 보장 안 돼 계약 해지의 위험도 커 신고하는 기업이 적다"고 전했다.
특허 관련 전문가들은 기술탈취에 대한 피해 기업의 입증책임 부담 완화와 행정적 지원제도 강화하지 않으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중소기업에게 피해구제 장치로서의 실효성이 거의 없다며 법과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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