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10.15 부동산 대책, 시장을 읽지 못한 정부의 착시

데일리시론 / 이정우 기자 / 2025-10-19 22:55:47
-정부 대책 반복되는 실패, 책임지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현금 부자만 기회 얻는 ‘양극화된 부동산 시장’ 고착화 우려


 정부가 내놓은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은 이름과 달리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보유세 인상, 규제지역 확대, 토지거래허가제 도입 등 일련의 조치들은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기는커녕 불확실성과 혼란만 키우고 있다. 부동산 정책의 방향타가 서민의 주거 안정이 아닌 단기적 ‘가격 억제’에만 매달려 있다는 점에서 정책 철학의 빈곤이 여실히 드러난다.

 

하나, 세제 정책은 이미 시장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 지난해 종합부동산세 체납액은 8012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불과 4년 전보다 4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서울 강남권은 체납액이 줄어든 반면, 성동·마포 등 비강남 한강벨트와 관악·구로 등 외곽, 그리고 인천·부산·대전 등 지방 도시에서 체납액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는 고가 주택이 몰려 있는 강남권은 임대 수요와 자산 여력이 있어 세 부담을 흡수했지만, 외곽과 지방에 주택을 가진 이들은 버티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같은 세제 정책이 계층·지역별로 다른 충격을 주면서, 역설적으로 부동산 불평등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하나, 정책 설계의 부실이 시장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토지거래허가제를 비롯해 이번에 발표된 고강도 규제는 국민의 재산권 침해 논란을 넘어 정부 부처 간 기본적 협의조차 없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발표 자료에선 아파트에만 적용된다더니, 곧바로 상가·오피스텔에도 적용된다는 문구가 함께 실렸다. 이튿날 금융위원회는 슬그머니 ‘비주택은 예외’라는 Q&A를 내놓았다. 이 정도 혼선이라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정책 검증 체계의 붕괴라 봐야 한다. 금융당국과 국토부가 서로의 조치를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시장은 어느 지표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하나, 공급정책 역시 공허하다. 정부가 사전청약을 통해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의 희망’을 선전했지만, 파주 운정역세권 개발 사업 좌초로 1300명이 넘는 당첨자가 피해를 보게 됐다. 분양가 상한제와 결합된 ‘로또 청약’이라는 달콤한 기대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이다. LH는 계약금 몰취분을 후속 사업에 활용하겠다고 했지만, 청약자 입장에선 4년이라는 시간을 송두리째 잃은 셈이다. 공급 확대를 내세웠던 정부의 핵심 프로그램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는 방증이다.

 

하나, 재건축 시장 역시 불확실성의 늪에 빠져 있다. 강남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에서 50년 만에 토지 소유권이 원소유주에게 반환되는 판결이 나오며, 재건축 일정이 또다시 지연될 위기에 처했다. 시가 1250억 원 규모의 핵심 부지가 분쟁에 묶인다면 재건축 사업은 당연히 속도를 잃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공급 확대를 강조해도, 현장의 법적·제도적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숫자만으로는 시장을 움직일 수 없다.

 

결국 이번 대책은 구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설계였다. 세제는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규제는 행정 혼선을 키우며, 공급은 신뢰를 잃었다. 무엇보다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 구조가 전무하다. 한국의 부동산 정책은 지난 수십 년간 실패와 반복의 연속이었지만, 실패를 인정하고 물러난 정책 당국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상황에서 시장은 정부 발표를 하나의 ‘참고 변수’로만 취급하고, 실질적 투자는 자금 여력이 있는 현금 부자들만이 주도하는 구도가 고착화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은 단순한 가격 조정의 대상이 아니다. 이는 국민 자산의 70% 이상이 묶여 있는 국가경제의 중핵이며, 가계 소비와 금융 안정성에도 직결된다. 지금처럼 단기적 수요 억제에 치중한 땜질식 규제로는 장기적 안정을 도모할 수 없다. 정책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장과의 신뢰, 제도 설계의 일관성, 그리고 무엇보다 정책 실패에 대한 실질적 책임이 전제돼야 한다.

 

10.15 대책은 시장의 현실을 읽지 못한 정부의 착시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국민은 더 이상 실험 대상이 아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본령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대책 역시 또 하나의 ‘실패한 대책’으로 역사에 기록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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