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희의 스포츠 초대석] ③ '스키황제' 허승욱

스포츠종합 / 심재희 / 2011-09-28 16:37:48
살아있는 스키전설 "평창올림픽에서 새 역사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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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매거진=심재희 기자] 지난 2011년 7월 7일 새벽. 전 세계의 시선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더 반에서 펼쳐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현장으로 쏠렸다. 오는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 도시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순간,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등장해 '평창'의 도시 이름을 크게 외쳤다. 접전의 예상을 깨고 평창이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기록하면서 경쟁도시였던 독일 뮌헨과 프랑스 안시를 제치고 완벽한 승리를 거두는 순간이었다. 두 번의 실패를 딛고 일어서 드디어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평창이었다. 대한민국의 온 국민이 환호성을 내질렀고,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2018년 평창올림픽 유치가 결정되던 그 날, 그 역사적인 순간에 주먹을 불끈 쥐며 오랜 기다림에 대한 추억에 잠겼던 인물이 이번 스포츠 초대석의 초대손님이다. 대한민국 스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 받고 있는 허승욱 감독(지산 리조트 소속)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년 동안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지냈고, 현재 국가대표 감독으로 후배들을 맹 조련 중인 허승욱 감독을 만났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스키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허 감독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평창올림픽을 위한 20년의 기다림

너무나도 기쁜 마음에 평창올림픽에 대한 이야기로 스타토크의 문을 열었다. “드디어 평창올림픽이 유치됐는데 기분이 어떤가?”라고 묻자, 예상했던 대로 허승욱 감독은 환한 표정으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선수 시절부터 오랫동안 동계 스포츠인으로서 간절히 기다리고 기다렸던 최고의 경사가 현실로 다가온 것에 대해서 연신 만족감을 드러냈다. "많은 분들이 여러 각도에서 노력을 기울였기에 평창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고 봅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앞선 두 번 실패 때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두 번의 실패를 딛고 이룬 대업이기에 더욱 감격적입니다. 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평창올림픽 유치는) 대한민국 전체의 경사입니다." 마치 자신의 꿈을 이룬 마냥 기뻐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허승욱 감독의 말처럼 평창은 2전 3기에 성공했다. 의욕적인 자세로 2010년과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섰지만 연거푸 미역국을 마셨다. 두 번 모두 1차 투표에서는 1위를 차지했지만, 2차 투표에서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현지 실사단의 평가도 좋았고 현지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지만, 평창은 마지막 순간에 경쟁도시에 밀리면서 동계올림픽 꿈을 훗날로 미뤄야만 했다. 그리고 올해 7월 남아공 더 반에서 세 번째 도전 만에 '승리의 평창'을 외쳤다. 허승욱 감독은 이에 대해서 '20년 이상의 기다림'이라는 표현을 썼다.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오랫동안 평창올림픽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제가 국가대표로 한창 뛰던 때부터 국내 도시의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나왔었습니다. 1999년 강원도동계아시안게임이 성공적으로 치러지면서 평창의 올림픽 꿈이 조금씩 현실화되기 시작했죠. 이후 우리나라가 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동계올림픽에 대한 관심도 또한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동계올림픽에 대한 열망은 더 커졌다고 봅니다. 그렇게 따져보면 20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한 숨은 노력이 있었던 겁니다. 말이 쉬워 20년이지 정말 힘들고 꾸준한 노력이었다고 봅니다. 그 동안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크고 작은 노력을 기울인 많은 분들께 정말 감사 드립니다." 선수로서 그리고 이제는 감독으로 평창올림픽을 열혈 지지해왔던 허승욱 감독의 모습이 새삼스레 다시 느껴졌다.

# 외로운 스키황제

허승욱 감독은 대한민국이 낳은 최고의 스키 선수다. 아직도 ‘선수 허승욱’을 뛰어넘는 선수가 국내에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스키 전설'이라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다. 어린 시절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였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초등학교 6학년 때 스키로 전향했고,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면서 중학교 2학년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에 허 감독은 "스키는 4살 때부터 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참 스피드 스케이팅을 하다가 우연하게 스키 선수가 됐는데, 그 당시에는 선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표로 뽑힐 수가 있었죠"라며 자세를 낮췄다. 아무리 선수가 적었다지만 10대 중반의 나이에 국가대표로 뽑힐 정도로 그는 천재성을 확실히 인정받았다.

1987년 중학생 신분으로 처음 국가대표에 선발된 허 감독은 2006년까지 무려 20년 동안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대한민국을 대표했다. 한국스키가 세계 수준과는 거리가 있어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그는 무려 5번의 올림픽에 참가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선수였다. '외로운 스키황제'라고 불리며 당당하게 세계의 벽에 도전했던 그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서 21위를 차지한 게 저의 올림픽 최고 성적입니다. 올림픽 20위 목표를 끝내 달성하지 못해서 아쉽네요." 잔잔한 미소를 짓는 허 감독의 모습에서 후배들에 대한 기대감이 묻어 나왔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국제대회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허 감독은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아닌 아시안게임 가운데 하나를 자신의 최고 무대로 꼽았다. "1999년 강원도에서 펼쳐진 아시안게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금메달을 두 개 땄습니다. 제가 금메달을 따서 기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성공적으로 동계아시안게임을 치러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 최고의 대회가 치러진 곳으로 자리잡고 있는 강원도. 그 강원도의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게 됐으니 감회가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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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있는 스키전설

허 감독은 2006년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접었다. 당시 '한국스키=허승욱'이라는 공식이 성립되고 있던 상황이라 적잖은 사람들이 허승욱의 은퇴에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에 그는 "후회는 없었습니다. 선수로서 더 하고 싶은 생각도 물론 있었죠. 하지만 선수가 아닌 다른 역할로 스키를 맞이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고, 망설임 없이 은퇴를 결정했습니다"라며 은퇴 결정에 큰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20년의 긴 시간 동안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그는 선수로서의 은퇴가 스키인생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확실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는 현역 은퇴 이후, 새로운 스키인생을 개척하면서 한국스키의 발전을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지산 허승욱 레이싱 스키스쿨'을 만들어 한국스키의 저변 확대에 큰 힘을 보탰다. 현재 '지산 허승욱 레이싱 스키스쿨'은 선수 20명과 회원 120명으로 이뤄진 큰 모임으로 발전했다. 또한, 허 감독은 선수 생활을 접고 곧바로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2006년 8월 처음 지도자의 문에 들어섰고, 현재 대한민국 알파인 스키 대표팀 총감독을 맡고 있다. 여기에 '허승욱 with bhs'이란 스키샵을 운영하면서 스키 동호인들에게 스키의 매력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 상투적이지만 '살아있는 스키전설'이라는 말이 지금의 허승욱 감독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다음으로 아쉬움 섞인 솔직한 질문을 하나 던졌다. "한국스키가 왜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할까?" 이에 허 감독은 냉철한 대답을 내놓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스키인구가 적지는 않습니다. 약 600만 정도가 스키를 즐기고 있으니 매우 훌륭합니다. 한국사람 8명 가운데 1명은 스키를 즐긴다는 계산이 나올 정도죠. 하지만 정식 선수는 6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스키인구 가운데 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10만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아직도 한국스키 하면 허승욱이 떠오른다'고요. 좋은 선수가 나올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스타탄생이 이어져야 한국스키가 더 발전할 겁니다." 살아있는 스키전설의 간절한 바람은 그를 뛰어넘는 새로운 스키스타의 탄생이었다.

# 한국스키의 가능성과 한계

허승욱 감독 자신은 매우 아쉬워하고 있지만, 현실은 아직도 '한국스키 하면 허승욱'이다. 많은 사람들은 허승욱 감독이 아직도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고 알고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한국스키가 그 만큼 발전이 더디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한국스키는 가능성이 없는 것일까? 허 감독은 "가능성은 무궁무진 하다"라고 곧바로 대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어 "스키에서는 세계랭킹이 2만위 정도까지 있습니다. 아마도 골프 다음으로 정식 선수가 많을 겁니다. 60명의 선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에서 몇 백 위권 선수가 나오는 것 자체가 가능성이 있음을 증명합니다"라며 한국스키의 가능성에 대해 희망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그렇다면, 한국스키와 세계적인 스키강국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허 감독은 이 부분에 대해서 "한국스키와 세계적인 스키강국의 수준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라는 말부터 꺼냈다. 그리고 이어 "기술과 파워에서 모두 (한국 선수들이) 많이 밀리는 게 사실입니다”라며 현실을 인정하는 자세를 취했다. 잠시 '가능성은 있지만 한계가 보인다니 아니러니 하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에 허 감독이 가려운 부분을 긁어줬다. "한국스키의 한계는 결국 적응력 부족 입니다. 유럽의 제대로 된 경기장에서 훈련하는 선수들과 열악한 환경 속에 있는 우리 선수들은 적응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유럽 전지훈련을 매번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입니다. 제대로 된 경기장에서 시합을 뛰지 못했으니, 제대로 기술을 발휘하는 법과 힘을 쓰는 요령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라며 아쉬운 현실을 되짚었다.

아울러 허 감독은 "최근 10년 사이에 우리 선수들이 많이 발전했습니다"라고 말한 뒤 "평창올림픽을 위해 여러 부분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아직 7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고, 스키를 비롯한 설상 종목에 대한 관심도 이전보다 훨씬 더 높아져 고무적입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스키에 대한 투자와 선수지원 시스템이 확대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기에 허 감독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지고 한계는 점점 더 허물어지고 있으니, 한국스키의 도약은 머지않아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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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에서 새 역사를

인터뷰 막바지에 허 감독은 자신의 목표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는 먼저 "지도자로서 후배양성을 잘하는 것이 제의 기본 임무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후배들이 정말 멋진 선수로 거듭나는 것이 감독으로서의 최고 목표죠.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갈고 닦은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해줄 겁니다"라며 멋진 지도자가 되겠다는 뜻을 거듭 내비쳤다. 그리고 이어 "한국스키가 단계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끝까지 노력할 겁니다. 월드컵과 유럽컵, 그리고 올림픽 등의 세계적인 무대에서 선전하는 우리 선수들이 나오는 날을 머릿속에 항상 그리고 있습니다. 세계 무대에서 승승장구 하는 모습이 자주 비춰지면, 스키도 분명히 인기종목이 될 겁니다"라며 의욕적인 자세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스키란 어떤 것이냐?"라는 조금은 엉뚱한 질문을 건넸다. 허 감독은 조금 망설이더니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 말을 보탰다. "어린 시절부터 개인적으로 스키는 재미 있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선수 시절에도 재미가 있었고, 지도자가 된 지금도 물론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재미 있을 겁니다. 한 순간도 의무적으로 스키를 탄다던가 흥미를 잃은 적이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될까요?" 살아있는 스키전설의 우문현답이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허 감독은 마지막 인사로 "오는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선수 허승욱을 뛰어넘는 제자가 분명히 나옵니다. 반드시 지켜보세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도자로서도 스키와 함께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는 그가 평창올림픽에서 자신의 스키인생에 큰 획을 긋겠다는 목표를 확실히 드러냈다.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스키전설' 허승욱 감독이 평창올림픽에서 후배들과 함께 한국스키의 새 역사를 창조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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